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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Feb 21. 2018

<리틀 포레스트>를 실존주의 동화로 감상하기

숲의 향과 색이 그리운 바람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어느 숲에 아카시아, 밤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사과나무, 감나무, 참나무, 배나무, 벚나무가 살았다. 다들 햇빛, 흙, 물, 공기로 생명을 얻어 자기만의 색깔과 모양으로 자신을 맘껏 드러냈다. 햇빛, 흙, 물, 공기, 그리고 친구의 영혼이 함께 연출한 대로 자기 시간에 맞춰 숲에 나타나, 싹, 잎, 꽃, 열매를 맺다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아카시아는 밤나무를 부러워하지 않았고, 사과나무는 벚나무가 되려 하지 않았다. 물론 소나무도 벚나무처럼 꽃을 피우려 애쓰지 않는다. 다들 자기만의 모양과 색, 열매 그리고 향기를 갖고 살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나무가 행복했고, 행복한 나무가 모인 그 숲도 다채로운 색과 향기로 행복했다.




어느 순간 콘크리트가 이 숲을 덮었다. 이어 천둥과 같은 굉음과 먼지가 날리더니 길을 따라 가지런히 가로수가 자리 잡았다. 그러자 가로수 옆 화단으로 아카시아를 시작으로, 밤나무, 소나무 등이 자리 잡았다. 콘크리트가 숲을 덮는 순간 모든 나무는 마치 '가로수처럼 살아!'란 명령을 받은 것처럼, 가로수를 닮기 위해 앞다투어 노력했다. 그러자 마지막까지 버티던 소나무, 참나무도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가로수처럼 살기로 마지못해 결심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콘크리트가 흙을 덮으면서 가로수처럼 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나무도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 대세에 합류했다. 자기를 잃어가는 것 같아 불편했지만 다들 이렇게 사는 게 최선이라고 말해 다수를 따르기로 선택했다. 아카시아가 가장 빠르게 가로수를 닮아갔다. 그래서 예전처럼 여름에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예전에 숲을 가득 채웠던 그 향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이걸 본 밤나무 사과나무도 마치 경쟁하듯 가로수를 닮아갔다. 벚나무와 감나무도 늦었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콘크리트 생활에 적응해 갔다. 하지만 느티나무는 흙을 잊지 못해 콘크리트 위에서 말라죽었다. 다들 안타까웠지만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기에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한 번 지나갔다. 모두 이제 그럭저럭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다. 두 해가 지나자 모두 숲을 잊고 콘크리트 위가 마치 자기들의 고향인 것처럼 살게 되었다. 아카시아, 밤나무, 소나무 모두 가로수처럼 사는 데 익숙해졌고, 나머지는 힘겹게 콘크리트 위에서 버텨내고 있었다. 모두 다채롭고 향기로웠던 숲을 잊을 무렵 몇 해 전에 숲에서 쉬어갔던 바람이 다시 찾아왔다. 바람은 숲이 콘크리트가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람은 모두 가로수처럼 행세하는 숲의 친구들을 보고 더 깜짝 놀랐다. 한동안 바람은 말이 없이 있다가 아카시아에 인사했다. 아카시아에 넌 가로수가 아니고 여름에 달콤한 꽃을 피우는 아카시아라고 말해 주었다. 바람은 도로 옆에서 만나는 친구마다 가로수가 아니고 밤나무, 소나무, 벚나무라고 말해주었다. 바람은 모두에게 너만의 시간에 맞게, 너의 색깔과 모양으로 사는 게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바람의 말을 믿지 않았고, 일부만 진정한 자기를 가까스로 기억해냈다. 하지만 자기를 발견한 나무들도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아카시아와 밤나무는 이내 포기하고 믿지 않았던 사과나무처럼 가로수로 살기로 선택했다. 감나무와 벚나무도 예전처럼 열매와 꽃을 뽐내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행복하다는 걸 알았지만 가로수처럼 사는 게 익숙하고 편했기에 본래의 자신을 감추거나 묻은 채 살기로 했다.






바람은 모두에게 '너는 가로수가 아니야! 너의 모양과 색깔, 꽃, 열매를 가지고 너답게 살아!'라고 얘기했지만 외면당했다. 자신을 잃어버린 채 환경이 강요한 대로 사는 옛 친구를 보며 바람은 슬프게 울었다. 자신을 찾는 데에 어렵고 용기 있는 선택이 필요하단 걸 이해하지만, 바람은 그래도 슬펐다. 참 많은 색깔과 향을 가졌던 숲이 그리운 바람이 이제 그곳을 떠나려 한다. 바람마저 떠나면 모두가 자신을 잊은 채 콘크리트 위에서 숨 막혀할 텐데.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그런데 바람이 향할 숲마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쓴 이 동화로 <리틀 포레스트>의 영화평을 대신한다. 이 이야기에 영화의 주제의식과 아쉬움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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