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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Mar 08. 2018

<120 BPM>, 성 소수자 혐오의 기원

음악이 먼지로 빚은 아브라함과 숀의 심장, 이어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한다







숀은 먼지와 재로 늘 우리와 함께



<120 BPM>은 9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에이즈 감염자가 중심인 '액트 업'(ACT UP)이란 단체의 활동을 영화로 만든 거다.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도 이 단체에서 실제로 활동하거나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단체의 당시 활동을 생생하게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연인으로 나오는 두 남자의 눈으로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대중의 편견, 그 편견에 눈치 보는 정부의 위선과 늑장 대응,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제약회사의 행태, 상당수 행동하지 않는 성 소수자, 심지어 '액트 업' 단체 내부 갈등까지 비판적으로 응시한다.






성 소수자 혐오의 기원


<120 BPM>이라는 텍스트를 해석하기에 앞서 어떻게 다수 기독교인이 동성애(same-sex relationships)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상당수 기독교인이 갖는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히브리 고전(구약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어내는 해석학적인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구약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 19장에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소돔을 찾아온 여호와의 천사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때, 남자를 사랑하는 소돔(sodomy; 남색; 동성애) 사람들이 롯의 집에 몰려와 두 남자를 자신들이 겁탈할 수 있게 내어달라고 요구한다. 롯은 이에 자신의 처녀 딸들을 줄 테니 이 두 남자를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한다. 소돔 사람들은 롯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롯의 문을 부수어서라도 그 두 천사를 강간하려 한다. 이때, 그 천사들이 소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해 롯의 가족을 피신하게 하고 하느님의 명령대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한다. 동성애(same-sex relationships)에 대한 다수 기독교인이 보이는 혐오는 창세기 19장을 이렇게 문자 그대로 읽어내는 데서 비롯되었다.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상당수 기독교인은 하느님이 동성애(남색)를 종교적인 죄(sin)로 보았고, 그래서 소돔을 멸하라고 명령했다는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 믿었다. 보수 기독교인(성서를 문자 그대로 읽는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신도)이 성 소수자를 포함한 차별 금지법과 이와 관련한 인권 선언에 극렬히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도 초기부터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레즈비언에겐 처음부터 가혹했다. 14세기가 돼서야 비로소 남자 간의 애정에 대해 종교적인 죄로 판단했다. 그 이후부터 기독교는 동성 관계에 대해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죄라는 일관된 입장을 갖게 된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성 소수자가 치료의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동성애를 화학적 치료나 거세가 필요한 정신적 장애로 이해하게 된다. 1992년까지 세계 보건기구조차 성 소수자를 정신 질환자로 분류했다. 하지만, 그 이후 영국, 러시아, 마지막으로 2001년 중국 정신의학회도 성 소수자를 더는 정신질환으로 분류하지 않았다(Mottier 2008, 39-40).


그렇다면 현재는 어떻게 성 소수자를 인식할까? 사회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이해는 이렇다. 개인의 성 정체성은 사회와 그 사회의 권력관계,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Mottier 2008, 113). 한 예로, 고대 히브리인이 성 소수자를 소도미(sodomy; 남색)라며 종교적인 죄로 이해할 때,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그리스 도시국가에선 동성 관계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에선, 성인 남성 시민이 십 대 소년을 정치적으로 교양을 갖춘 시민으로 기르기 위해 개인 지도를 했다. 이런 사제 관계에서 동성애가 흔했다(Mottier 2008, 37).






틀림과 다름


이렇게 서로 다른 두 문화가 충돌할 때, 기독교인은 '거긴 외국의 문화니까, 우리 하느님만 진짜 하느님이니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가 아무리 위대해도, 그들이 뭐라 해도, 그건 죄악이야!'라고 해 버린다. 정말 이렇게 간단하게 '동성 관계는 죄악이야!'라고 결론 내려도 될까? 이성애는 옳고 동성애는 잘못된 건가? 우리 문화는 수준 높고, 너희 문화는 저열하고 타락한 것인가? 우리 종교는 진짜고 너희 종교나 철학은 가짜인가? 다수가 하는 이성애는 도덕적으로 옳고, 소수가 하는 동성애는 부도덕한 것인가? 마지막으로, 특정 문화와 종교의 교리가 원치도 않는 성 정체성(이성애)을 개인에게 강요할 권리가 있을까? 최소한 이 정도 질문을 던져보고 그다음에 성 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정해 보는 건 어떨까?






먼지 속에 있는 그들


이제 영화 <120 BPM>을 살펴보자. 구약 성경 창세기 18장 27절을 인용해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말해 보겠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천사에게 소돔에 의인 50명이 있어도 소돔을 멸하시렵니까?라고 정의롭게 묻는다. 결국, 아브라함은 '의인 10명이 있어도 남색(동성애)하는 소돔 전체를 멸하시렵니까?'라고 용기를 내 묻는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두려운 하느님께 정의로움을 요구한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자신을 '먼지와 재'(dust and ashes) 일뿐이라고 스스로를 낮춘다. 영화 내내 내 시선과 생각을 사로잡았던 부분이 먼지와 재였다. 영화 장면 곳곳에 심장을 뛰게 하는 음악이 있는 클럽 장면이 보인다. 그때 액트 업 단체의 남녀 활동가가 춤추는 그곳의 공기를 카메라의 빛으로 잡는다. 신비로운 조명이 공기 중의 먼지를 잡아낸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신비하게 빛나는 먼지를 볼 때마다 하느님의 천사에게 '소돔을 멸하지 말라고'한, 자신을 먼지와 재로 낮춘 정의로운 아브라함이 생각났다. 그 먼지 속에 성 소수자, 에이즈 감염자, 성매매 여성의 인권 증진을 위해 용감하고 재치 있게 맞섰던 주인공 숀의 모습도 계속해서 떠올랐다. 정부의 무관심과 위선, 자본의 논리가 장악한 제약회사의 냉혹함, 대중의 무관심과 비겁함으로 인해 억울하고 안타깝게 죽어 간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 그 먼지 속에서 보였다고 하면, 이 또한 너무 과한 해석일까? 난 카메라가 잡은 그 먼지 속에서 위에 열거한 모든 사람들이 보였다. 숀이 재가 되어 공기 중에 뿌려질 때, 소돔을 멸하지 말라고 말한 아브라함과 정의로운 일을 하다 죽은 수많은 이와 합류했다.





나가며


이 영화의 종반부에 숀의 몸이 재가 되어 뿌려지는 장면이 나온다. 사회의 무관심과 위선, 생명보다 더 우선한 돈의 논리, 그리고 이웃의 인권을 짓밟는 사회의 부조리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뿌려진 숀의 몸이다. 활활 타 가루가 된 숀의 몸은 그동안 무관심과 편견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의 몸(재:ashes)을 상기시켰다. 숀은 죽어 재가 돼서도, 불편하지만 엄연하게 우리 사회에 있는 추악함과 위선을, 무관심과 무지를 보라고 추동한다. 불편한 진실을 대면할 용기 있는 자를 초대하는 영화이자, 동시에 진실에 맞설 용기가 없어 위선으로 현실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수많은 겁쟁이에게 이렇게 외치는 영화다. '아무리 외면해도 너희가 보고, 들이마시는 그 먼지 속에 숀의 용기가, 숀의 두려움과 환희가, 숀의 고통과 한이 엄연히 담겨 있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고. 이제 그만 외면하고 일어서라고.’







사족: 내가 그동안 본 영화는 진짜 내가 선택한 걸까? 그때 느낀 내 감정도 연출된 것이 아니었을까?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상업 영화 시장에서 제작사, 배급사, 수입사가 밀약해 국내 전체 영화관 중에 반 이상을 자신들이 투자해 만든 영화로 도배하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 영화가 대세라며 향하는 관객이 상당히 많다. 그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영화도 자본이 보라는 영화만 볼 거냐? 즐거움과 감동의 눈물도 자본이 웃으라고 혹은 울라고 할 때, 웃고 울 거냐?' 이건 감독이 배우의 연기를 디렉트 하는 건지, 관객의 감정을 디렉트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언론이 뉴스로 생각을 지배하는 것에 모자라 이젠 감정조차 자본이 투자한 영화가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건가?' 이 영화는 개봉관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생각하길 귀찮아하는 다수는 불편한 영화를 싫어하니까. 그래서 영화평으로 힘센 종교와 거대한 무리의 겁쟁이들에게 한 소리 해봤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나도 그 겁쟁이 무리 속에 한 명이 될 거 같아서!     





  

우리 사회에 이런 불편한 진실을 용기 있게 대면할 먼지와 재(아브라함과 숀 같은 사람)가 50만 명이, 아니 10만이나 있을까? 참고로 국내 상영이 끝나고 찾아보니 국내 관객수는 포털 다음 집계에 따르면 5,196명이다. <120 BPM>은 2017년 칸 그랑프리 수상작이자, 43회 세자르상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는 데도.











Bibliography     

Mottier, V. (2008), ‘Sexuality’,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 영화 스틸 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음을 알립니다.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111578#117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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