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공장 Jun 06. 2019

<캡틴 마블>의 역설

마블 영화가 미국을 디스해? 실수일까?








뒤바뀐 선과 악

자신이 확신했던 선과 악의 기준이 어느 순간 환상이나 세뇌의 결과였단 사실을 직면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절대적인 선과 악의 기준보다는 선악을 스펙트럼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견해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100% 악한 사람과 나라도 없고, 그 반대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스펙트럼의 기준 또한 입체적이어야 하며, 여러 관점에서 사물과 현상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여주인공 캡틴 마블은 선이라고, 정의라고 믿었던 크리 종족이 실상은 갈 곳 없는 약한 종족을 탄압하고, 타 종족에게 자신들의 기준만을 강요하는 제국주의적인 생각과 행동을 보여 왔단 사실을 깨닫는다. 이 영화를 만든 나라와 어딘가 닮아 있지 않나?





이 영화를 보는 3억 명의 미국인이 자기 나라가 테러 단체라고 지목한 집단보다 지구 상에서 가장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국가인 것을 알게 된다면, 그동안 이를 까맣게 몰랐던 미국인의 심정은 어떨까? 2차 세계대전 전에 수백 년 동안 영국과 유럽 여러 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미국은 하와이, 괌, 사모아, 그리고 태평양과 중미 부근의 많은 곳을 강제 점령하고 있다. 이 링크는 미국이 사실상 식민지배를 하고 있다고 밝히는 가디언의 기사다. https://www.theguardian.com/news/2019/feb/15/the-us-hidden-empire-overseas-territories-united-states-guam-puerto-rico-american-samoa 미국은 지난 세기에 제국주의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정작 전후에는 위에서 언급한 많은 지역을 자신들의 영토(territory)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눈치 보였는지 차마 식민지(colony)라고는 못하고 그 점령한 곳을 테러토리 즉 영토라고 부른다. 여전히 미국은 은밀히 혹은 공공연하게 제국주의를 하고 있는 거다. 이런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술수를 미국인 3억 명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알고 있을까? 캡틴 마블과 정의와 지구를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마블의 어벤저스 영웅들이 막아내거나 토벌하는 테러 집단이 실상 미국의 제국주의에 저항하거나, 미국의 간섭에서 자유롭게 독립하려는 약소국의 독립투사나 저항군이란 사실을 미국의 일반 시민이 깨닫게 된다면 어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까?

다수 미국 시민이 미국이 지난 세기 전후(post-war)부터 중남미와 중동에서 벌인 깡패 짓들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예를 들면, 쿠데타를 뒤에서 지원해 반미적인 성향을 가진, 하지만 민주적으로 선출된 남미 국가의 정부를 전복시킨 행태들 말이다(Steger and Roy 2010, 99-101). 칠레에서 피노체트가 CIA의 도움으로 벌인 쿠데타가 전형적인 예다. 베네수엘라의 정부 전복 시도도 미 정부가 벌인 깡패 짓의 최근 예다. 중동에서는 어떤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저지르는 학살과 만행을 묵인하거나 후원하는 미국 정부의 행태와 비정함은 독립 투쟁하다 쓰러져 간 수많은 팔레스타인 시민의 생명을 경시한 거다. 이런 건 미국이 자행한 악행의 극히 일부다. 다수의 미국 시민이 지난 세기 전후부터 미국이 전 세계에서 자행한 이런 모든 악행과 비정함을 알게 된다면, 미국인들도 캡틴 마블이 느낀 그 배신감과 실망을 느끼지 않을까? 자국 정부의 대외 정책과 그 실행에 분노가 느껴지지 않을까? 최소한 양심적인 미국 시민은.


캡틴 마블에서 우리의 극우화 된 애국 청년과 태극기 부대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도 보였다면

국부라고 믿는 이승만이 제주도민 3만여 명을 7년 동안 학살(제주 4•3 사건)한 자임을, 경제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고 믿었던 박정희가 실상은 민주투사와 대학생을 죽이거나(인혁당 사건 포함해서) 탄압하고, 그 피해자 가족들까지 괴롭힌 독재자이며 기회주의적인(일제 감점기엔 친일, 해방 직후엔 사회주의자, 정부 수립 이후로는 친미주의자였던) 행동을 보였음을, 자유 시장경제를 수호한다는 우리 보수당과 수구적인 적폐 언론이 친일과 군부 쿠데타 세력에 빌붙거나 이들의 후예였음을 아프지만 냉정한 시선으로 직시하게 된다면, 애국청년이 되어버린 이대남 상당수와 태극기를 들고 외치는 어르신들에게 어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까? 평생 선하다고 믿었던 것이 실상은 악한 것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론, 애국 청년이 되어버린 상당수 이대남들과 태극기 부대는 이를 인정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 중에 소수라도 인식한다면, 뒤바뀐 선악을, 뒤바뀐 정의와 불의를 인식하게 된다면,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의 앞잡이인 할리우드 영화가 모처럼 좋은 일을 한 번 한 것은 아닐까? 역설적이지만, 뚜렷한 선과 악의 갈등 구조로 스토리를 만드는, 매우 일차원적인 할리우드 영화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선과 악이 절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을 수 있다는 정말 살짝 수준 높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 거다. 매우 빈약한 철학적 아이디어와 정말이지 화려한 볼거리만으로 관객의 푼 돈을 털어 온 할리우드 블록 버스터 영화가 이 정도라도 메시지를 담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진전인가?


당신이 믿고 있는 선과 악이 실제로는 다르거나, 정반대일 수 있다!











Bibliography     

Steger, M. B. and Roy, R. K. (2010), ‘Neoliberal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위의 이미지는 아래의 다음 영화 링크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힌다. https://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101393#1294578 















이전 01화 문학이론, 영화, 그리고 이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