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상식의 역할
제인 오스틴 소설과 영국 제국주의
19세기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으며 당시 영국 사회의 문화나 삶의 양식, 그리고 그 삶의 양식이 보이는 화려함과 풍요로움에 대해 선망했다고 한다. 오스틴이 그리는 영국의 상류층 사람들의 삶에 대한 묘사가 세련되었기 때문일 거다. 문제는 이런 선망을 가진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영국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 국가의 국민이었다는 데 있다. 제국의 수탈을 당해 힘들어하는 식민지 국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것을 빼앗아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영국인의 문화적 취향과 풍요로운 생활에 대해 부러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원망하고 비난해야 할 제국의 약탈은 묻히고, 오히려 영국인의 삶의 방식을 부러워하고, 그래서 그 삶의 양식이 식민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문화적인 표준이 되는 일이 일어났다(Culler 2000, 35-6).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문학과 이념
문학 이론가들 상당수는 문학은 상식을 담는 그릇이며, 그 상식을 재확인시켜 사람들의 의식에 심는, 대중에게 가장 친밀한 수단이라 비판했다. 소설과 영화 시나리오 같은 문학이 지배를 숨기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지배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선 “상식”이란 보이지 않는 장벽을 가장 먼저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왜 그럴까? 상식은 사회의 여러 제도, 관습, 그리고 규범 등에 관한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특정한 시대와 지리적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수많은 여러 종류의 생각을 가진다. 상식은 이것들 중에 교집합이라 부를 수 있는 영역에 모인 생각의 총합이다. 이런 상식이 현재 사람들의 삶에 일어나는 수많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선택이 왜 중요할까? 지금까지 내가 내린 선택의 결과들이 모두 합쳐진 것이 현재의 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한 인간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의 공교육 과정을 거쳐 사회화하며, 취업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이 선택에는 선거 때마다 하는 투표, 노동을 통해 개인 재산(아파트, 자동차, 여러 소비재 등)을 쌓아 가는 것과 같은 정말 많은 것들이 포함돼 있다. 사람들의 삶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대부분의 수많은 선택은 현재의 제도가 허락하고 규정한 범위 내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 누군가가 만들어 이미 정해진 교육 제도, 선거와 같은 정치 제도, 사유 재산권에 대한 보호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등이 일생 동안 사람들이 내리는 수많은 선택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우리 선택에 영향을 주는 제도는 상식이란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둥에 의해 뒷받침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인정하는 정치•경제•교육과 같은 제도들이 상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에 토대를 둔 이런 여러 제도를 개혁해야 할 때, 이 제도들을 떠받치는 상식이 제도 개혁을 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왜 일까? 교육, 정치, 경제 제도는 보통 한 두 세대 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래서 그 제도들은 보통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던 것들이라, 사람들은 그것들을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런 보완이나 개선이 필요한 제도를 고쳐야 할 때, 사람들에게 불안이나 정서적인 거부감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이미 그러한 제도로 기득권에 오른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과 거부감을 활용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시민들이나 정치인의 활동을 방해하고, 제도 개선의 타당성을 반박하는 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상식이 이렇게 개혁을 막는 장치로서 작동한다면, 상식의 역할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상식이 개혁의 장애물이 되는 것을 넘어 민주적이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제도를 문제가 없는 합리적인 제도로 보이게 한다면, 이 단락 앞에서 그람시가 언급한 상식의 위험한 역할에 대해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충분한 이유가 있는 거 아닐까?
상식의 또 다른 얼굴
토마스 모어(1500~)는 당시 영국 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열악한 사회를 목격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이상 사회를 꿈꾸며 <유토피아>를 썼다. 유토피아는 “세상에는 없는”이란 의미를 가진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모어가 꿈꾼 사회는 하루에 여섯 시간만 일해도 되고, 집도 10년에 한 번씩 바꾸어 공유하고, 물건을 돈 주고 살 필요가 없는 말 그대로 완벽한 사회다. 금이나 돈 같은 것을 중히 여기지 않고, 정신적인 활동이나 여러 취미 활동에 가치를 두는 문화적으로도 수준 높은 사회다. 놀라운 점은 이런 사회에 뜬금없이 노예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게 완벽하게 보이는 사회에 어울리지 않게 노예가 있다. 토마스 모어는 노예 제도에 대해 크게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모어가 살던 당시 사회나 문화에서 노예는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왜 일까? 노예와 노예제가 있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그 시대인들이 가진 상식이었으니까. 상식이 모어 자신이 꿈꾼 이상적 사회에 노예 제도를 존속하게 만든 거다. 이처럼 상식은 동시대인이 가지는 편견과 그것으로 인한 차별마저 못 보게 하는 즉, 은폐하는 어두운 얼굴을 가지기도 한다.
상식을 찍어내는 공장
상식은 어디에서 비롯할까? 상식을 만드는 거대한 생각공장은 주로 대중 교육 제도인 학교와 언론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현재의 제도와 그 제도의 작동 방식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준다. 언론과 같은 미디어는 어떤가? 그 사회와 여러 제도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을 뉴스의 형태로 시민에게 전한다. 현실과 그 제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현실과 현실의 토대인 주요 제도를 다시 한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재확인하게 한다. 사람들은 어떤 정보나 설명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그 내용에 대해 더 신뢰하게 된다. 그래서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내용을 듣는 학생과 시민은 다시 한번 학교와 언론이 전하는 사회가 가진 여러 제도의 타당성을 큰 의심 없이 인정하게 된다(Belsey 2002, 31-7).
영화의 두 얼굴
학교와 언론보다 훨씬 더 친숙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대중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하는 수단이 문학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학의 범위에는 소설, 희곡, 시 같은 전통적인 것에 더해 드라마 대본, 광고, 영화 시나리오 같이 의미가 담겨 있는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이 브런치 북 <인문학자가 읽는 영화라는 텍스트>에서는 영화 시나리오에 집중할 거다. 영화에 보이는 현실 묘사, 이런 묘사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실에 대한 재확인, 그리고 이 재확인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탐색해 볼 것이다. 문학이 독자가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문학의 한 형태인 영화도 관객이 가진 상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현재의 모순적이고, 불공정한 제도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영화가 오스틴의 소설처럼 현실의 것을 그대로 묘사해 관객이 개선이 필요한 현재의 제도를 비판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긍정하게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영화라는 텍스트는 관객이 불평등한 현재의 상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부정적인 측면을 가지기도 한다(Culler 2000, 39-40). 이 브런치 북에선 이런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비평과 함께 영화의 순기능인 측면 즉, 상식을 조롱하는 예술적인 영화도 다룰 거다. <인문학자가 읽는 영화라는 텍스트>에서 비평할 영화는 인문학원 생각공장에서 강의한 영화들과 ‘브런치 무비 패스’의 시사회에서 봤던 영화들이 주를 이룰 것이다.
Bibliography
Belsey, C. (2002), ‘Poststructural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Culler, J. (2000), ‘Literary theory’,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