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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Nov 05. 2019

문학과 문화 패권(Cultural Hegemony)

영화 시나리오나 소설에 담긴 상식이 지배체제를 정당화한다고?









제인 오스틴 소설이 영국의 제국주의를 은폐했다고? 그렇다면 영화는?

19세기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으며 당시 영국 사회의 문화나 삶의 양식, 그리고 그 삶의 양식이 보이는 화려함과 풍요로움에 대해 선망했다고 한다. 오스틴이 그리는 영국의 상류층 사람들의 삶에 대한 묘사가 세련되었기 때문일 거다. 문제는 이런 선망을 가진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영국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 국가의 국민이었다는 데 있다. 제국의 수탈을 당해 힘들어하는 식민지 국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것을 빼앗아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영국인의 문화적 취향과 풍요로운 생활에 대해 부러워하고 있었다고 한다. 원망하고 비난해야 할 제국의 약탈은 묻히고, 영국인의 삶의 방식을 부러워하고, 그래서 그들의 삶의 양식이 문화적인 하나의 표준이 되는 일이 일어났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문학은 지배에 저항하게도 했지만, 지배를 은폐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22~1937.4.27)



문학은 상식을 만들어 퍼트리는 가장 친밀하고 대중적인 수단이다. 그래서 지배를 숨기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지배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선 “상식”이란 보이지 않는 장벽을 가장 먼저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왜 그럴까? 상식은 특정한 시공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수많은 여러 종류의 생각 중에 교집합이라 부를 수 있는 영역에 모인 생각의 총합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상식이 현재 우리 삶과 그 삶에 일어나는 수많은 선택을 규정하거나 영향을 준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이런 선택의 결과들이 합쳐져 현재의 내가 된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의 공교육 과정을 통해 사회화와 취업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수많은 선택을 하고, 선거 때마다 투표를 하는 행위와 노동을 통해 개인 재산(아파트, 자동차, 여러 소비재 등)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선택을 한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끊임없는 선택과 그 결과로 일어나는 모든 행동은 현재의 제도가 허락하고 규정한 범위 내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 우리 시대에 정해진 교육 제도, 선거와 같은 정치 제도, 사유 재산권에 대한 보호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등이 일생 동안 우리가 내리는 수많은 선택에 보이지 않지만 강하게 영향을 준다. 이렇게 우리 선택에 영향을 주는 제도는 상식이란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둥에 의해 뒷받침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인정하는 정치•경제•교육과 같은 제도들이 상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상식에 토대를 둔 이런 제도가 상당한 수준의 개선 혹은 개혁이 필요하다면, 그런데 그 상식이 이러한 제도의 개혁을 막는 장치로서 작동한다면, 상식의 역할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상식이 개혁의 장애물이 되는 것을 넘어 민주적이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제도를 문제가 없는 당연한 제도로 보이게 한다면, 이 단락 앞에서 그람시가 언급한 상식의 위험한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충분한 이유가 있는 거 같다.



편견과 차별의 또 다른 이름이 상식이 아닐까?


토마스 모어(1500~)는 당시 영국 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열악한 사회를 보았다.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이상 사회를 꿈꾸며 <유토피아>를 썼다. 유토피아란 말의 어원은 “세상에는 없는”의 의미다. 책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모어가 꿈꾼 사회는 하루에 여섯 시간만 일해도 되고, 집도 10년에 한 번씩 바꾸며 공유하고, 물건을 돈 주고 살 필요가 없는 완벽한 사회다. 금이나 돈 같은 것을 중히 여기지 않고, 정신적인 활동이나 여러 취미 활동에 가치를 두는 문화적으로도 수준 높은 사회다. 문제는 이런 사회에 뜬금없이 노예제가 존재한다. 이 세상에는 없을 정도로 모든 게 완벽한 사회에 어울리지 않게 노예가 있다. 토마스 모어는 노예 제도에 대해 크게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모어가 성장한 당시 문화나 제도에 노예는 당연한 것이었다. 즉, 상식이었다. 상식이 모어 자신이 꿈꾼 이상적 사회에 노예 제도를 존속하게 만든 거다. 이처럼 상식은 동시대인이 가지는 편견과 그것으로 인한 차별마저 못 보게 하는 즉, 은폐하는 어두운 얼굴을 가진다.



상식을 찍어내는 공장은 무엇일까?


상식은 어디에서 비롯할까? 상식의 근원은 거대한 생각공장이다. 상식을 만들어 퍼트리는 공장은 주로 대중 교육 제도와 언론이나 인터넷 같은 미디어다. 학교는 현재의 거의 모든 제도와 그 제도의 작동 방식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고, 언론과 같은 미디어는 그 제도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뉴스의 형태로 시민에게 전한다. 현실과 그 제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현실과 현실의 토대인 주요 제도를 다시 한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는 어떤 정보나 설명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그 내용에 대해 더 신뢰하게 한다. 그래서 이렇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내용 즉, 그 사회의 현 상황과 그 현재 상황을 있게 한 여러 제도의 타당성이나 존재 근거는 다시 한번 의심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 상식으로 재확인된다. 교육과 미디어와 함께 더 친숙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대중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방식이 문학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학의 범위에는 소설, 희곡, 시 같은 전통적인 것에 더해 드라마, 영화 시나리오, 광고 같이 의미가 담겨 있는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이런 것들 중에 영화 시나리오에서 보이는 현실 묘사, 이런 묘사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실에 대한 재확인, 그리고 이런 현재의 여러 제도(the status quo)에 대한 긍정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브런치 북 <상식의 독>에서 다루어 보겠다. 문학이 독자가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게 하는 역할을 했던 것처럼, 영화도 관객이 가진 상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현재의 모순적이고, 불공정한 제도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영화가 오스틴의 소설처럼 현실의 것을 묘사해 관객이 개선이 필요한 현재의 제도를 그저 긍정하게 하는, 이 때문에 불평등한 현재의 상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측면도 있다. 이런 점에 대한 비평과 함께 영화의 순기능 즉, 관객이 가진 상식의 모순적 측면과 그 위험성을 지적하거나, 때로는 그 상식을 조롱하는 멋진 영화에 대한 평가도 브런치 북에 담겠다. 내가 <상식의 독>에서 비평할 영화는 인문학 강의하면서 강의 주제와 관련해서 텍스트로 사용했던 것들과 시사회에서 봤던 영화들이 주를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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