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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Apr 19. 2020

니체, 강자가 되는 법?

언제까지 주권(결정권)을 정치인에게 위임하기만 할 건가?







파업하던 노동자들에게 총질했던 스웨덴이 어떻게 노동자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복지국가가 되었을까?

지난 세기 초에 스웨덴의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하고 있을 때, 사장이 조용히 팔짱 끼고 지켜보던 경찰에게 SOS를 보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위하는 노동자들에게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지팡이는 관두고 총을 들고 가 시위 참여하는 노동자에게 총질했다. 복지 국가 스웨덴의 흑역사다. 이 사건 후에 공포와 분노에 휩싸인 노동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을 세우는 회의에서 결국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자본가들이 골프 치고 와인 마실 때, 우리는 마을 회관에서 책을 읽어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해법을 찾아보자!”



시민이 강자가 되는 법은?


그 결과 노동자들은 “결정권을 누가 가질 거냐? 즉 정치가 모든 문제의 답이다!”란 인식을 하게 된다. 이건 루소의 깨달음이었다. “정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래서 노동자 대표를 총선에 내 보내고, 학습을 통해 누가, 어느 당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지를 선명하게 알아서 사회 민주당을 40년 가까이 선거를 통해 장기 집권하게 한다. 이 집권 기간 동안 그토록 유명한 스웨덴의 복지 제도가 굳건히 뿌리를 내리게 된다. 90년대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전히 스웨덴은 가장 완벽한 자본주의와 가장 완벽한 사회주의를 실현한 나라로 정치학자들에 의해 평가받고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양립이 불가능할까?


학교에서 외운 내용과 다르게 들릴 수 있지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양립이 가능하다. 사회 경제 영역에서 공적 성격이 있는 부분(교육, 의료, 주거, 연금, 사회의 여러 기반 시설과 서비스 등)은 공영화해  사회주의(공동체 중심 주의)적인 장점을 살릴 수 있다. (민영화된 미국의 의료 서비스가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상황을 보면, 의료 영역과 같은 부분이 한국에서처럼 공적인 영역 안에 왜 있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인다.) 한편으로, 이런 공공 영역으로 합의하지 않은 나머지 영역을 민간영역으로 남기고, 경쟁과 혁신을 장려하면 자본주의 또한 잘할 수 있다. 이 두 가지(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균형 있게 합리적으로 운영한 나라가 스웨덴이다. 그래서 정치학자들이 스웨덴을 가장 성공한 자본주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가장 모범적인 사회주의 국가라 평가한다.




지식은 약자를 결정권을 되찾은 강자로 만든다!


약자였던 노동자를 강하게 정치의 주체로 만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지식”이었다. 그것도 약자의 관점으로 사회를 해석하여 얻은, 약자가 스스로 만들어 낸 지식이었다.



지식을 만든 사람 혹은 지식인을 조종한 세력이 늘 지배자였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는 주인이었을까? 아니면 지배당하는지도 모른 채 자신을 주인이라고 믿은 (결정권이 없는) 노예였을까?


지식은 인간과 사물(세계)을 한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평가) 한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지식이란 건 존재할 수 없다. 이게 니체의 관점주의다. 이런 이유로, 지식은 그 지식을 만든 사람 혹은 그 지식을 만들게 한 세력을 위해 늘 봉사했다. 니체는 이렇게 생각했다. 힘에의 의지, 즉 자신을 새롭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해석하고, 이 해석에 바탕을 둔 지식을 만들어 활용해야 한다. 지식으로 자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푸코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식은 권력이다.” 지식을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지배해왔다. 안타깝게도, 힘의 근원인 지식을 가까이하고 활용한 자들은 늘 소수의 지배자였다.

니체는 강자에게 목숨을 구걸해 생명을 연명하는 약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늘 자신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자에 맞서라 했다. IMF 이래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자본의 위세는 커지고, 한국의 노동자는 비정규직으로 전락해 늘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자본의 위세에 눌린 한국의 수많은 약자에게 한 질문이 놓여있다. 동료가 파업하다 총 맞아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혔던 스웨덴 노동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나 혼자 무엇을 할 수 있겠어?라는 무력감에 눌러 고용불안과 해고의 반복에 익숙해져 살 거냐? 아니면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특히 정치, 경제 관련) 함께 읽으며 스스로 해법을 찾아낼 거냐?”



자본과 정치권력과 유착된 메이저 언론이나 지식인 집단이 주는 기사, 정보, 혹은 팟캐스트 볼 시간에, 다 함께 지식이 집약된 책을 보는 건 어떨까? 약자인 우리 삶을 변화시킬 즉, 약자인 나를 강하게 만들 지식을 만들어 운명에 당당히 맞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니체의 인식론(관점주의) 가르치다가, 언론이 선정해 해석한 여러 기사와 사설(질 낮은 지식)에 끌려다니는 것이 과연 우리를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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