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분이 대체 무얼까 하여 거리를 걷다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서울은 연일 이어진 장마 아니, 기후재난이 그대로 되돌려 준 폭우로 인해 사람도 반려견도 몸도 마음도 모두 물에 젖어 비틀 너덜거리는 버려진 종이박스처럼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는 몰골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니 그냥 제 기분이 그러하다고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빗속을 꿋꿋이 헤쳐나가는 저 커플들이라든가, 땀을 흘리며 러닝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울을 채운 빗줄기가 흘러가는 인생의 배경일지도 모르니까요.
다만 저는 방에 있어도 퍼붓는 빗속에 홀로 내버려진 고장난 우산처럼 외로웠습니다.
단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었고, 맛난 것을 먹지 못해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물론 그건 정말 중요한 삶의 구성요소이지만요. 정말 저를 힘들게 하는 건 서울을 채운 빗줄기가 흘러 흐르다 쌓여 누군가의 삶을 휩쓸어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과, 그런 사건을 마주했을 때 생길 수밖에 없는 분노인 듯합니다.
세상에 제 마음대로, 아니 내가 생각하는 순리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건 그리 반가운 체험이 아닙니다. 계속 겪는다고 해서 굳은 살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혹자는 부딪치고 부딪쳐 난 상처가 굳어지는 건 굳은 살이 아니라 살이 죽는 것 (괴사)이라고 했습니다. (혹자는 바로 저 입니다만.)
어리석은 치기로 던져질만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맥없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은 하나의 불의한 사건의 발생을 알리는 경고등일진대, 모두가 합의했다고 여겨지는 규약과 절차 속에 삿된 욕심과 비뚤어진 동료애가 스며들기 시작하면 합당한 인과관계를 바라는 사람은 차오르는 불의를 피해 집을 탈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것 하나 챙기지 못하고요. 이것은 자연에서 비롯된 홍수만큼이나 무서운 사회적 홍수입니다.
참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또 융성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허상이고, 그래서 물인 줄 알고 마시러 갔더니 먹을 수 없는 물임을 확인하고 돌아서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에 휩쓸려 사라져 버린 현명하고 합리적이며 햇살같이 따뜻하고 밝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마음 속으로 떠올려 볼때마다 이 빗속에 던져진 외로움을 느낍니다.
세상은 그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들, 성실한 사람들이 아무 이유없이 저 탐욕과 무지의 강물에 휩쓸려 말 그대로, 말 그대로 죽어버려야 하는 세상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걷던 길 그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습니다. 여전히 하천으로는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덥고 축축한 여름 밤을 밤새도록 걷고 싶었습니다만, 거역하기 힘든 생리현상과 늦기 전에 내일 먹을 것을 사들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발걸음을 돌리는 나에게 시인 김수영이 "나는 왜 조그만 일에 분개하는가?"라고 묻는 듯 했습니다. 다만 제게는 그 질문이 "나는 왜 조그만 일 때문에 마땅한 분개를 접어야만 하는가?"로 고쳐 들렸습니다.
집으로 걸음을 돌린 이유는 단지 즉흥적인 이유들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늘의 기분은 저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고,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 파고들어 괴롭힐 준비가 된 내 마음의 장마같은 것이며, 그렇기에 장마를 막을 순 없어도 어느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도는 살아온 시간만큼은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같은 날들의 기분은, 결국은 다시 부딪침으로써, 쓰리고 아프고 다치고 넘어져서 억-울-음이 터져나와 저 탐욕의 흙탕물에 섞여 보이지 않게 된다 할지라도 결국 다시 또 부딪침으로써 함께 가야 할 기분이자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들)의 기분 탓인지 아침나절부터 아프던 머리가 계속 지끈거립니다만, 아직은 두통약을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견딜 수 없어 두통약을 먹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서글프고 외로워질 것 같습니다. 이 기후재난도, 사회적 홍수도 내일은 더 나아지기를, 어슴푸레 구름만 빛나는 밤하늘을 보며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