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발굴
2년 전 이맘 때 쓴 글을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내용은 손대지 않고 글투를 존댓말로 고쳤습니다.
저는 공포영화를 보지 못합니다.
어릴적에는 뭣모르고 티비에서 방영하는 외화중에 공포물이 있어도 곧잘 본 것 같아요. 사탄의 인형이라든지..하지만 어느 순간 공포영화로부터 멀어지게 됐습니다. 세간의 공포영화 마니아들을 영광시켰던 컨저링이라든지 하는 공포영화를 전 애인은 매우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공포영화를 절대 사절하는 사정으로 둘이 본 영화는 늘 공포영화와 거리가 멀었지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공포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현실세계가 공포고 지옥인데 뭣하러 더 힘들게 공포영화를 보냐?"고 말하곤 했지만 그건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입니다. 제가 미시적으로 처한 현실은 '적어도' 공포영화와 지옥의 그것과는 동떨어져 있으니까요.
일전에 예능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에서 공포특집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보고 겪은 공포담을 나누다가 귀신과 좀비도 무섭지만 "사람이 가장 무서운 것 같다"는 의견이 모아져 모 만화가가 사람과 관련된 무서운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한 농부가 자꾸만 서리당하는 수박 걱정에 시달리다가 "이 수박 중 하나에 청산가리가 들어있음"이라는 팻말을 적어 붙였다고 합니다. 이튿날 확인해보니 정말 도둑맞은 수박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팻말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추가되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두 개."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라고들 말하지만 공포영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방식은 대개 은유적, 비유적입니다. 재난영화를 공포물이라고 칭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재난영화가 공포를 유발하기는 하나, 다루는 공포가 직유적이며 공포의 유발이 주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공포영화가 은유적이고 비유적으로 현실을 반영할 때 그것은 어떤 재난영화나 리얼 다큐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공포영화 제작자들은 의도적으로 현실 비판의 메시지를 곳곳에 심어놓기도 하고요. 공포영화를 즐기는 사람의 현실이 공포이고 지옥이지는 않더라도, 공포영화는 세계가 지금 이대로 달려갔을 때 그 끝에 무엇이 놓여있을지 환기하는 역할을 할 겁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공포영화가 가진 그 특성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일상이 잠재적인 공포인 사람들이죠. 혼자 이동하기 불편한 장애인에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성소수자에게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대화가 공포일 겁니다. 여기에 여성의 이름을 추가하려 할 때 반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공포영화같은 상황이 그 삶에 가득하기를 저주해줘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