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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다

(1) '빨리'를 멈추다

by 엔틸드

모든 일은 약간의 억지와 압박과 호기심과 즐거움이 함께 들어올 때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다. 마음먹게 하는 순간은 호기심과 즐거움이, 움직이게 하는 순간은 억지와 압박과 살아가는 환경, 마감의 데드라인 같은 것들이 만들어 낸다.


실은 거리를 걷는 일을 시작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였다. 집 근처에서 일을 마쳤을 때, 시간은 조금 남아 있고 거리는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일 때, 걸으면 무리는 없지만 평균 도보 거리보다는 좀 길 때, 그럴 때는 억지와 압박보다는 호기심과 즐거움이 앞선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막차가 끊겨 돌아갈 길이 막막한데 주머니가 허전해서 택시도 탈 수 없을 때, 이런저런 억지와 압박의 조건들 때문에 하릴없이 걷는 밤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런 날엔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행인과 부딪치지 않을지, 혹 나를 해코지하려는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지는 않을지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운 채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걷게 된다. 거리를 걸을 때 자연스레 보게 되는 빛과 그림자처럼, 한가하게 걸어가던 순간도, 걷는 일 자체가 투쟁인 것처럼 여겨지던 순간도 있다.


리베카 솔닛은 그의 책 “걷기의 인문학”에서 걷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조건으로 걷기로 마음먹고 비워둘 수 있는 시간, 걷는 내 몸만을 온전히 인식해도 위협당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 걷는 데 문제없는 몸을 꼽았다. 나라는 존재가 시간과 공간 위에 놓여 있다는 원초적인 감각을 가장 확실하게 새길 수 있는 행위가 바로 '걷기'다. 걷기의 예찬론자로서,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도시에서 걷는 행위에서 오는 여러 느낌과 의미들을 기록하려고 한다.




나는 서울이란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게다가 주욱 한 동네에서 살았다. 주거이동에 있어서만큼은 서울이란 도시에 걸맞지 않다싶게 오래 머무는 느린 동선으로 살았다. 그러나 나도 도시인인 이상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가 요구하는 빠름을 내재화했다. 대중교통이 발달하고 자동차가 보편화되어 이미 차량 중심의 거리가 된 서울에 사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내가 걷기에 눈을 뜨게 된 건 언제였을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뜻하지 않은 인생의 여유가 생겼을 때 아니었을까 싶다. 세상이 ‘낙오’ 나 ‘게으름’이라고 부르는 인생의 여유, 남들과는 다른 길을 택하려 마음먹고 나서 갖게 된 어쩔 수 없는 결과물 같은 것이 삶에 들어와서 생겨난 게 걷기라는 버릇이었던 것 같다. 모두가 발을 멈추고 자신의 길을 무엇에게 맡길 때, 발을 움직여 내가 선택한 길로 가겠다는 홀로서기의 상징적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동네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도 걷기 버거웠다. 그 때는 동네의 익숙한 거리임에도 풍경을 보거나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이내 정신을 차려보니 서너 정거장도 거뜬히 걷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시간과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걷기 경험을 할 수 있음에 신기해하는 내가 되었다.


걸을 수 있는 거리distance가 늘고 걸으며 만나게 되는 거리street가 많아지면서, 길거리나 동네 근처 뿐만 아니라 전혀 모르는 낯선 동네 골목길, 대학교 캠퍼스, 나아가 시위와 집회 현장까지 걷는 공간과 그 의미가 점점 다채로워졌다. 동시에 걷기라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내 안에서 많은 것이 퍼져나왔다. 걷는 동안 눈과 귀와 코, 그리고 공기를 맞는 피부까지 모든 것이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랬기에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며 주체성을 충분히 발휘해 세상과 대면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걷는 거리는 선생이고 전시장이며 때로는 강가이고 그림이 된다. 우리가 딱히 귀기울이고 눈길을 주지 않을 뿐, 거리에 대한 무수한 단상과 이미지들은 지금도 거리를 걷는 이들에게서 생겨나고 있다. 이 삭막해보이는 도시와 무표정한 거리의 사람들에게서 좀 더 풍성한 삶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기회는 걷는 일에 주목할 때 찾아올 것이다.


걷는다는 건 '빨리'를 멈추는 행위다. 그러나 완전히 멈추지는 않는 행위다. 목적지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꾸준히 나아가는 행위다. 걸을 시간과 공간과 몸과 의지만 있다면 나를 다치지 않고, 자신의 리듬과 흐름을 가지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다. 세상이 만든 경로를 이탈하여 나만의 경로를 개척하는 걷기라는 행위는 현대의 도시인, 그러니까 대다수의 문명사회 사람들에게 필수이자 로망이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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