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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Feb 22. 2016

망각의 시간

3g

[pixabay]


길었던 그날의 하루. 점점 짧아지는 내일에 대해. 과거와의 낙차와 미래와의 낙차에 대해, 점철되어있는 망각의 시간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 나는 하루가 참으로 길던 날을 추억한다. 녹아버린 크레파스의 냄새와 짓무른 그림, 공포에 질려 식스센스를 보지 않고 뛰쳐나온 겨울날의 온도, 남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뜻밖의 고백들.


그때는 일상이었던 모든 일들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 오늘도 어설프게 살아가는 나는 그때만큼 열심히 살아가지 않음을 자책한다.


하루는 길고 어제는 짧다. 엊그제 무슨 색 양말을 신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와 어떤 잡담을 나눴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밤. 나는 망각의 시간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정면에서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원래 이런 얼굴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갑자기 내 눈앞의 얼굴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던 날들을 생각한다. 망각의 시간 속에서 뒤돌아 내게 말을 건네는 부모님의 모습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어제는 오늘의 그림자이고 오늘은 내일의 그림자이다. 수많은 시간 속에서 나는 잊고 또 잊는다. 기억하기 위해 잊는 것이 아니라 잊기 위해 기억한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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