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홍은 랑젠과 금발소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매우 착실한 사람이다. 그녀는 어려서 기차역 여관에 일하기 시작해 여러 해째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그녀가 자기 스스로를 표현하는 말들이 이를 잘 뒷받침해 주고 있다.
배경이 있는 사람은 달라. 그들은 아주 쉽게 오고 쉽게 가거든. 지금은 다 가고 없어. 그들은 항상 날아올라서 가장 높은 가지에 앉지. 나 혼자서 낙하했지만, 배경이 없으니까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했어.(김지연 역, 2008, p.232)
렁옌이 하늘만큼 높은 사람이라면 난 운명에 순응하는 사람이야...(중략)... 난 돈도 없고 이 일에만 만족하고 있어.(김지연 역, 2008, p.237)
하지만 그녀에게도 욕망의 '뱀'은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매우 지루했다(婚育史十分漫长的女性) 또한 그녀는 남편이 그녀의 외도를 의심하는(我丈夫怀疑我有外遇) 태도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녀는 두 가지 그녀만의 비밀스러운 행동을 간직하고 있다. 첫째는 <자정의 마음과 마음(午夜心与心)>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 쉬페이(雪飞)에게 마음을 주고 열심히 그의 프로를 듣고 한 번은 전화 연결까지 되었었다.
두 번째는 창을 열고 창밖 철로를 보며 목욕을 하는 것이다. 기차가 오면 기차를 보면서 목욕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비밀스러운 작은 행복도 산산이 부서졌다. 쉬페이가 기차를 타고 가다 그녀의 목욕 장면을 본 것이다. 졸지에 쉬페이에 의해 노출광(暴露狂)으로 매도되어버린 그녀는 가지고 있던 라디오를 버리고 마음에서 쉬페이를 지워 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더 깊숙한 곳에 더 오래되고 집요한 욕망을 감추고 있었다. 그 욕망은 복권(彩票)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하루 종일 복권으로 대박 나기를 바라며, 복권 1등에 당첨되었는데 돈을 짊어지고 집으로 갈 수가 없어서 광장에 앉아서 마구 우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데 11월에 이르러 이 도시는 축제 분위기에 빠져 든다.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告别二十世纪,走向二十一世纪)를 맞는 축제인 것이다.
11월 11일, 새천년 맞이 복권이 도시의 네 군데 판매소에서 동시에 판매되었다.
복권 사세요, 복권 사세요, 복권 사세요! (김지연 역, 2008, pp.276-277)
열심히 점을 치고 복을 비는 이웃 여자들의 예언인 "슈홍은 뱀의 해 이전에 대운이 터진다(修红蛇年之前撞大运)”는 말이 결실을 맺은 결과의 하나는 기차역 여관의 미소의 스타(微笑之星)로 뽑힌 것인데 그녀는 또 다른 대운을 기대하며 복권 20장을 산다. 그녀는 뱀 여덟 마리에 별 여덟 개가 그려진 1등 상인 폭스바겐 승용차(桑塔纳车)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행운이 쉽지 않을뿐더러 운전도 못하고 지배인의 잔소리와 동료의 질투까지 염려하였다. 하지만 뱀 여섯 마리와 별 여섯 개가 그려진 2등 상품인 냉장고는 진심으로 원했다.
슈홍의 집에 있는 냉장고에서는 소음이 끊이지 않았고, 너무 오래되어 내동실의 온도와 냉장실의 온도가 거의 같았다.(김지연 역, 2008, p.280)
그녀는 복권 20장 중 3장이 당첨된다. 하지만 그녀가 바랐던 2등이 아니고 뱀과 별이 한 마리씩 그려진 8 등상 하나, 그리고 2장은 뱀만 그려진 기념상품 두 장이었다. 상품은 코팅된 프라이팬(不粘锅)과 칫솔이었다. 그녀는 출근길에 이 상품을 수령하기 위해 긴 줄을 섰다.
상대적으로 당첨된 사람이 적은 2 등줄은 한산했는데 슈홍이 원했던 상품인 신형 냉장고에 당첨된 안경을 쓴 엘리트 같은(戴眼镜的知识分子模样的) 사람이 나타났다. 슈홍은 부러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돈 있는 사람은 운도 좋구나(有钱人运气也好)'하며 부러워했다.
기차역 광장에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고 신형 냉장고를 만져 보려는 사람과 이를 제지하려는 당첨자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고 이 과정에 운반하는 냉장고가 떨어져 사람이 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일대 혼란이 발생했고 점점 더 무질서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몇 년 동안 여관에서 대피 훈련을 받아 다리가 빠른 슈홍은 미친 듯이 뒤쪽으로 내달았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붉은 제복은 소매가 뜯어지고 단추는 모두 떨어져 나갔으며, 드러나서는 안 될 부위가 지금 모두 드러났다.(1) 수치심에 다급해진 슈홍은 비옷을 들고 있는 남성에게 비옷을 빌려 줄 것을 거듭 요청하였으나 거듭 거절당하였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비옷을 빌려 주지 않는 쩨쩨한(小气) 남자가 아니라 슈홍을 보며 쑥떡 거렸다.
저 여자는 안쪽에서 달려 나왔어. 손에 있는 복권을 보라고. 얼마나 위험해. 상품이 사람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다니! 슈홍은 자신의 손에 몇 장의 복권이 있는 것을 깨닫고는 그 복권들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굴욕감을 견디지 못해 흑흑 흐느꼈다.(김지연 역, 2008, pp.283-284)
슈홍이 받은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충격은 광기로 이어져 눈물에 범벅이 된 그녀는 비옷을 가지고 빌려주지 않고 있던 남자에게 마치 상처 입은 암사자가 사냥 물을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像一头悲伤的母狮逼近了它的猎物) 달려갔다. 그녀가 그에게 던진 심한 욕설은 복권으로 인한 집단 광기에 피폐해진 슈홍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평소의 슈홍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이크 데이비스에 따르면 "빈민들의 절박한 생존투쟁을 고려하면, 빈곤층이 도시 생존의 '제3경제' (도박, 다단계, 복권 등 사이비 주술적 재산 획득 형태)에 광적인 희망을 건다는 것은 놀라운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슈홍의 경우 어려서부터 수십 년간 기차역 여관 한 곳에서만 근무했고, 예쁘지도 않고, 남편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고, 마음속의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라디오 진행자에게 노출광으로 매도되는 상처를 입었다. 뿐만 아니라 복권 20장을 사서 냉장고가 당첨되길 간절히 희망했으나 결국 8등 당첨에 그쳐 코팅된 프라이팬(不粘锅)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예기치 않은 광장의 소란으로 인해 포기하고 도망치다 옷이 찢어지는 낭패를 겪었는데도 사람들로부터는 '사람의 생명보다 복권을 중시한다'는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수통은 금전적 빈곤과 함께 해소하지 못하는 정신적 빈곤에 대한 치유의 대상으로 슈홍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1) 밑줄 친 부분은 필자가 수정함. 번역본에는 '옷이 뜯긴 부분들은 그대로 드러났다'로 돼있음.
(김지연 역, 2008, p.283) 인용문 원문은 아래와 같다.
(她的红色制服袖子裂了一个大口子,纽扣也几乎全部脱落了,不该暴露的部位现在都暴露了)
참고한 자료
苏童, 2020,『蛇为什么会飞』,上海, 上海文艺出版社.
수통(苏童), (김지연 역) 2008, 『뱀이 어떻게 날 수 있지(蛇为什么会飞)』, 파주, 문학동네.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 (김정아 역) 2009,『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파주, 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