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8일은 여름 귀신을 보내고 가을 귀신을 맞이한 날이다. 귀신은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고 들으려고 해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내게 다가와 그 신비한 존재를 까마득히 펼쳐내는 존재이다. 누가 여름을 가게 하고 가을을 부르는가? 나는 귀신의 소리에 홀려 무작정 둘레 길을 몇 시간 헤매다 산과 물이 만나는 곳에 이르러 큰 숨을 쉴 수 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넘실거리는 이 기운을 욕심껏 들여 마셨다.(위 사진이 그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모든 잘못의 발단은 인간에게 있다. 그것도 어리석거나 못난 사람들이 아니고 글줄이나 읽어 높은 모자를 쓴 사람들에게 있다. 천지의 기가 충만한 호젓한 산길에서 섬찟한 펼침막을 만났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자세히 볼수록 부아가 돋았다. 누가 저런 펼침막을 국민의 혈세를 들여 산속에 까지 매달아 놓았을까? 글자는 한글이지만 말은 우리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 표현이 거만하고 협박하는 문투로, 읽기에 매우 불편하다.
예를 들자면 아래, 위로는 산림이라고 써놓고 가운데 문장에는 임야(林野)라고 썼다. 하지만 임야는 ‘숲과 들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산에 있는 숲에 해당하는 표현은 아니다. 한자어로는 ‘나무가 무성(茂盛)한 들’이다. 중국어로는 ‘숲과 들’의 의미로 일반적으로 쓰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강남구청에서 사용하는 임야의 의미와 일치하는 뜻은 없다. 그 의미는 일본어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어로는 りんや(린야)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산림의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산림청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임야청이라고 한다.
문장의 경우를 잘 보면 심지어 공갈·협박까지 하고 있다. 맨 밑에 빨간색으로 강조하며 “대모산 내 산림 훼손 행위는 관련법에 의거 처벌합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언제부터 대한민국 구청 공원녹지과에 국민을 대상으로 처벌을 집행할 수 있는 사법적 기능이 부여돼 있는가? 볼수록 맹랑하고 교만한 표현 아닌가?
이러한 왜식(倭式-일본식) 한자어 문투는 독립군 지명 수배할 때 많이 써서 매우 권위적인 표현으로 착각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
만일 내가 쓴다면 아래처럼 쓸 것 같다. 물론 공무원이 되려고 오랜 시간 열심히 공부하고 국가관이 분명하고 국민에 대한 봉사를 위해 공무원이 된 분들은 훨씬 더 쉽고 깔끔한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이다.
숲을 망가뜨리는 것을
보신 분을 찾습니다.
요사이 숲의 나무를 함부로 망가뜨리는 짓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짓을 하는 것을 보신 분들은
공원녹지과 (02-3423-6286)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 대모산 숲을 망가뜨리는 짓은 관련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는 여름의 귀신들과 오는 가을의 정령들이 한데 어우러져 한 판 질펀히 법석거리는 절기가 백중인 것 같다. 금년 백중은 마침 일요일(8월 22일)이고 하니 천지자연에 가득한 귀신과 정령의 기운을 느끼며, 돌아가신 내 조상들을 위한 맑은 기도를 올릴 참이다. 그 길에 다시 정신이 어지러워지게 하는 엉뚱한 것들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 글을 요약해 강남 구청장에게 시정을 요구한 결과 2021년 8월 23일 아래와 같은 회신을 받았다. "참으로 왜색 표현을 굳게 지키겠다는 초지일관의 태도와 질문의 핵심은 일단 외면하거나 미루어 놓는 공무원 집단 특유의 향내가 물씬 난다" 하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가급적 그냥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연습을 하고자 한다.
한00님 안녕하십니까? 강남구청장 정순균입니다.
우리 구정에 깊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모산 둘레길 내 현수막 문구와 관련, 한00님께서 주신 의견에 대해 아래와 같이 답변드립니다.
우리구에서는 지난 4월 대모산 내 무단 벌채 등의 산림훼손 행위가 빈발함에 따라 목격자 신고 접수 및 행위자 확인을 위한 현수막을 제작 및 설치하였으며 지난 5월 현수막을 보고 신고한 주민에 의해 무단 벌채 행위자를 색출하는 등 대모산 내 산림훼손 행위 저감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단벌채 등 산림 훼손 행위의 경우「산림보호법」에 따른 과태료 부과 대상이며「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지목 "임야" 내 금지행위임에 따라 현수막 문구에 이를 명시하였고 무분별한 산림 훼손 행위 예방을 위해 처벌에 대한 사항을 포함시켰습니다.
다만, 한00님께서 주신 의견과 같이 대모산을 이용하는 등산객분들이 처벌사항과 관련된 현수막 문구에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추후 현수막 문구 제작 시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강남구정 운영에 많은 관심과 조언을 주시기 바라며
한00님의 가정에 늘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참고로 이건에 대해서 더 아시고자 하는 사항이 있으시면 아래 연락처로 연락주시면 더욱 자세히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