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앞선 '하북성의 옥수수 밭과 blue ocean'에 이어지는 글이다.
중국의 일반적인 국내 거래는 계약(合同)과 동시에 30%의 계약금을 선금으로 주고 제품이 준비된 후 검사를 하고 이상이 없으면 70%를 주고 물건을 받는 방식이다. 따라서 나도 하북성 당나귀 테너리에 30% 선금을 주고 계약하고 절강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공급하기로 한 날 가죽이 입고되지 않았고 또다시 지루한 '짜장면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비가 와 건조가 늦어졌다'이고 두 번째 이유는 '옥수수 수확으로 공인들이 휴가 갔다'였다. 세 번째 이유는 원자재 가격이 올랐으니 가격을 올리자는 것이었다.
3번째 이유가 두 번 반복되고 나서 나는 '토끼 작전'에 당한 것을 깨달았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 처음에 빠지는 것이 토끼 작전의 함정이다.
토끼는 겨울이 다가오면 맹렬하게 굴에 먹이를 저장한다. 겨울엔 모든 풀이 죽어 구할 수 없고 눈과 추위로 밖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윽고 겨울이 오면 굴속에 틀어박혀 우선 맛있는 풀부터 먹으며 봄을 기다린다. 봄이 일찍 와 새순이 돋으면 맛없는 묵은 풀은 버리고 거들떠보지 않는다.
일부 중국인은 사업도 그렇게 한다. 우선 조건 불문하고 오더를 잔뜩 받는다. 그런 후에 좋은 조건의 오더를 우선 진행하고 나쁜 조건의 오더는 차일피일한다. 그러다 더 좋은 조건의 오더가 없으면 선심 쓰는 척 진행해주거나 아니면 딴소리하고 오더 수행을 거절한다.
30% 선금이 볼모로 잡혀 있는 상황이므로 쉽게 화를 내거나 거래선을 바꾸는 것도 어렵다. 판단의 시점을 놓치면 돈 잃고 바보 돼서 다음 비즈니스에도 매우 좋지 않은 결과가 된다.
나는 우선 독일에 '당나귀 가죽 대신에 양가죽으로 납품하겠으며 당나귀 가죽은 잊어버리라'라고 통보했다. 돈만 손해 보는 것을 택한 것이다.
우중에게는 복잡하게 여러 소리 하지 말고 선금 준 30% 회수하는 것으로 본건을 잊어버리도록 지시했다.
또 다른 지시는 테너리 사장 책상 위에 있는 내 명함을 돌려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또 볼 사람이 아니므로 감정 상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속이 무척 쓰렸다. 한 과장은 밤마다 공장 마당에서 죽도를 가지고 검도 수련을 시작했다.
기합소리는 전보다 커졌다. 우중과 공장 사람들은 한 과장이 이상해졌다고 했다.
중국에서 당나귀 고기를 소비하는 대표적인 도시는 하북 성 보정(保定) 시이다. 보정 시는 과거 하북성의 성도(우리의 도청 소재지)였으며 지금은 북경을 보위하는 인민해방군 이 주둔하고 있는 유서 깊은 도시이다.
보정 시에 가면 당나귀 햄버거(驴肉火烧, donkey buger)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으며 가맹점 모집도 활발하다. 보정 사람들은 '하늘에는 용고기 땅 위에는 당나귀(天上龙肉 地上驴肉)'고기가 최고라고 한다. 당나귀 고기는 주로 두툼한 패티로 만들어 빵 사이에 끼워 햄버거처럼 먹는다.
하북성 테너리는 당나귀 햄버거의 재료가 된 당나귀의 원피를 수집해 가죽으로 가공한 것이다. 그런데 당나귀 햄버거가 전국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그 수량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너리 사장은 욕심껏 오더를 받고 높은 가격부터 납품을 하면서 시간을 끈 것이다. 다행히 원피가 입고되면 납품을 해주고 늦어지면 핑계를 반복하면서 토끼 작전을 구사한 것이다.
하북성 테너리 사장의 책상 위에 꽂혀 있던 명함들! 그 명함들은 피해자 목록과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