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계산이 어긋나 당사자끼리 해결을 하지 못하고 판사에게 판결해 달라고 하는 것이 민사 재판이다. 판사는 양쪽의 주장과 관련 근거를 살펴 법에 근거해 객관적인 판결을 내린다.
따라서 판결이 나면 판결 내용대로 줄 돈 주고받을 돈 받으면 서로 더 볼일 없이 끝난다. 하지만 돈 계산이 어긋 낫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누군가 한쪽은 반칙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즉 판결 내용을 무시하고 돈을 갚지 않는 일이 생긴다.
이렇게 돈 갚을 사람(이하 채무자)이 돈을 갚지 않을 때 국가는 돈 받을 사람(이하 채권자)에게 채무자의 재산을 강제로 처분해, 받을 돈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강제집행’을 인정하고 있다. 땅이나 아파트는 물론 가재도구 은행 예금, 보험, 월급 등 채무자의 모든 재산은 강제집행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강제집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 몰래 재산을 빼돌리면 ‘강제집행 면탈 죄’가 성립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의 형사상 처벌을받는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경험한 바에 따르면 재판에 져도 한 푼도 안 주고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즉 강제 집행면탈은 성공할 수 있다는 상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 경험담은 교활한 채무자의 꼼수와 이에 당하는 순진한 채권자의 이야기가 시작이다. 그리고 뒤늦게 정신 차린 채권자의 공격과 채무자의 수비, 여기에 더해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의 쥐새끼 같은 활약은 한 편의 대 서사시를 연상케 한다. 법도 이렇게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수 있다.
1. 3년 가까이 끌던 재판의 최종 대법원 판결이 났다.
“채무자는 3억 원(판결 당시까지 법정이자 포함)을 채권자에게 물어줘라 “
받을 돈은 5억이었지만 이미 난 판결, 더 이상 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돈은 앞으로 또 벌면 그만 아닌가! 채권자는 그렇게 심플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채무자는 자신 명의 아파트, 자신 명의 지분 100% 사업체, 은행 계좌 등 판결금 정도 돈을 갚을 충분한 재산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채무자는 자신이 이기면 정의의 승리지만 자신이 지면 굴곡진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희생물이라고 생각하는 종자였다.
2. 채무자의 변호사가 채권자의 변호사에게 연락, 갚을 금액과 가압류 내역을 알려 달라고 했다. 채권자의 변호사는 당연히 알려 줬다. 입금시킬 은행 계좌번호까지 알려줬다. 채권자 측에서는 누구도 채무자가 판결 금을 갚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3. 그러나 채무자 측은 차일피일하며 시간을 끌다가 한 달여가 지난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감동적인 제안을 한다.
“판결금의 이자는 빼고(그러면 3억이 2억이 된다), 판결 금 원금 중 절반만 부담하고(결국 1억이 된다) 이 일을 마무리 짓자”
채무자는 처음부터 판결 금을 갚을 생각이 없었고 채권자가 압류한 항목의 재산을 확인하고 빼돌리는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4. 채무자는 원하는 시간을 벌었고 변호사의 지휘 아래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해냈다. 물론 변호사는 보수를 받았다.
(1) 아내와 이혼을 했다.
(2) 집 주소를 서울에서 강원도 속초로 옮겼다.
(3) 자신이 경영하던 회사를 폐업하고 같은 자리에 다른 사람 명의의 다른 이름으로 개업했다. (물론 하는 일과 직원, 심지어 식당 식권까지도 승계했다)
(4) 변호사를 회사의 고문변호사로 영입, 고정적으로 돈을 줄 수 있게 만들었다.
(5) 기존 살던 집은 대출을 잔뜩 받아 챙기고는 경매로 날려 버렸다.
(6) 애 보러 시골에서 올라온 장모 명의로 다시 아파트를 구매했다. 이혼한 전처는 장모의 동거인이 됐다.
(7) 차를 제네시스로 바꿨다. 물론 채무자 명의는 아니다.
5. 만반의 준비를 끝낸 채무자는 ‘청구이의의 소’라는 것을 채권자를 대상으로 제기했다. 채권자는 처음 들어보는 소송 제목에 황당해하며 아제야 속은 것을 깨달았다. 소송 취지는 아래와 같았다.
"기왕의 판결 난 금액은 인정하지만 따로 받을 것이 있으므로 퉁 치면 줄게 없다"
결국 같은 내용의 재판을 한 번 더 하게하는 채무자 변호사의 절묘한 판단이었다. 이 소송도 대법원까지 2년 여가 지속됐다. 채무자는 숨돌릴 시간을 충분히 벌었고 변호사는 보수를 받았다. 재판 결과는 당연히 채권자가 이겼으나 변호사 비용만 들었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6. 채권자는 채무자의 급여통장을 압류했다. - 사장님 채무자는 이미 자신의 급여를 월 150만 원으로 조정해 압류를 피했다. 채권자는 새됐다.
7. 채권자는 채무자의 ‘재산조사’를 실시하고 ‘채무불이행자 등록’을 신청, 결정을 받아 채무불이행자 등록을 했다. - 채무자는 자신 명의의 모든 은행거래를 중단하고 우체국, 농협, 수협 등의 통장을 간헐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얼마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금융거래에 전혀 문제가 없게 됬다. 당연히 변호사는 보수를 받았다.
8. 채권자는 채무자의 거주지를 대상으로 가전, 가구 등 유체동산 압류를 진행했다. - 채무자는 위장전입의 수법으로 채권자가 채무자의 주소지를 법원 집행관과 방문했을 때 아무런 집기가 없었다. 채권자는 또 새된 것이다. 채권자는 법원 집행관에게 ‘집행 불능 조서’를 신청, 보관했다.
채권자는 관할 주소지 행정센터에 채무자의 거주불명 등록신청을 했다. 또한 행정센터 공무원이 사실조사를 한 후 작성하는 사실 조사서를 정보공개를 통해 받아 확보했다.
9. 채권자는 채무자의 ‘재산명시’를 법원에 요청, 결정을 받았고 법원은 송달을 시도했으나 채무자는 법원 송달 문을 받지 않는 방법으로 재산명시명령의 각하를 유도, 성공했다. 이제는 아예 매월 돈을 주고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고시원으로 옮겼다.(주민등록 초본 상에는 호실은 물론 고시원이라고도 표시되지 않는다)
10. 채무자는 기존 사업 외에 매월 최소 300만 원 이상, 1년에 5천만 원 이상의 또 다른 수입원을 개발했다. 이 돈을 안전하게 받기 위해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을 요청했다. 이미 강제집행 면탈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활약에 빛나는 이 변호사는 환상적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
(1) 변호사 자신 명의 통장을 채무자에게 알선, 그 통장으로 채무자의 수입금을 챙기도록 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당연히 채권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로 산다.
(2) 채무자가 받을 돈을 안주는 사람이 있으면 채무자의 변호사가 내용증명 발송 - 지급명령 신청 - 민소소송 등을 통해 꼭 받아온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11. 채권자는 채무자가 차명으로 금융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강제집행면탈’로 고소했다. 동시에 채무자의 변호사도 공범으로 고소했다.
12. 채권자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윤리위원회에 채무자 변호사에 대한 진정을 접수했다. 아무리 변호사가 흔한 세상이지만 이런 종자도 변호사를 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대한 변호사 협회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13. 채권자는 채무자와 채무자 변호사에 대해 ‘전자금융 거래법 위반 및 금융 실명법 위반’으로 형사 고소했다. 채무자 변호사의 법률 서비스에는 차명통장 알선이 포함돼 있으며 변호사 보수에는 차명 통장 알선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변호사가 알선한 통장은 범죄에 사용되었다. 또한 차명으로 받은 돈에 대한 매출신고, 개인 소득세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조세포탈의 죄도 성립한다는 취지이다.
14. 검찰은 ‘강제집행 면탈’ 사건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채권자는 채무자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채무자 변호사의 불법행위로 인해 채권자는 정당한 권리행사에 방해를 받았으니 채무자의 변호사가 대신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이다.
이제 채무자 변호사 본인이 여러 가지 재주를 피워가며 도망 다닐 일 만 남은 것 같기도 하다. 스님께서는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하던데 변호사는 자신의 채무에 대한 강제집행 면탈에 어떤 기법을 구사할지 자못 기대가 크다.
어려운 한자로 슬복서행(蝨伏鼠行)이라는 말이 있다. ‘이(louse)와 쥐새끼처럼 숨어 다닌다 ‘는 뜻이다. 서로 간에 다툼이 있어 동일한 규칙 아래 공정한 재판을 했다면 그 결과를 인정하고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고 잔대가리 굴려가며 당장의 이익을 탐하는 것은 칼날의 꿀을 빠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에 하나 슬복서행(蝨伏鼠行)하는 종자를 만날 경우의 행동요령을 간단히 정리해 뒷날의 귀감으로 삼는다.
1. 호시우행(虎視牛行) - 호랑이처럼 보되 소처럼 움직여라.
쥐새끼가 뛴다고 그걸 쫓아 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 경로를 살피고 들락거리는 구멍을 관찰하며 같이 어울리는 다른 쥐 종자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은 열불이 나더라도 참고 묵묵히, 하지만 눈에 불을 켜고 관찰하며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 옳다.
2.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 내가 살고 난 후 상대를 친다.
재판이나 고소 사건은 매우 신경이 쓰인다. 특히 피고 또는 피의자인 경우엔 불안하고 원고 또는 고소(고발)인 경우는 조급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법률 시스템의 시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침착하게 생업에 충실하는 것이 첫째이다.
3. 이직보원(以直報怨) - 곧음으로 원수를 대하라.
이나 쥐새끼인 경우에 도덕이나 포용은 사치다. 어느 날 ‘어깨를 옹송그리고 아첨하며 웃으며’ 사정하더라도 절대 곁을 주어서는 안 된다. 만에 하나 그렇게 한다면 이나 쥐새끼는 금방 또 누군가를 물고 해치며 나를 조롱할 것이다.
4. 아무리 현명한 주부도 쌀이 없으면 밥을 할 수 없다.①
아무리 유능한 형사, 검사, 변호사라도 강제집행면탈을 하는 채무자에 대한 증거자료가 없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면 하늘, 땅과 상의할 일이지 형사, 검사, 변호사와 상의할 일은 아니다. 강제집행 면탈은 합법적인 추심이 지속되어야 하며 그 근거자료를 잘 가지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당장은 별것 아닌 자료라도 시간을 가지고 수집하다 보면 법률 전문가의 눈에는 가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
① 중국 민간에서 관용어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원어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有再賢惠的老婆, 如果沒有大米也煮不出飯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