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와 문장부호가 없는 책이 있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과거의 책들은 띄어쓰기와 문장 부호가 없다. 특히 한문의 경우는 어떻게 띄어 읽느냐에 따라 그 뜻이 전혀 달라지는데 원문을 보면 아무런 표시가 돼 있지 않다. 따라서 읽는 방식에 따라 뜻이 천차만별이 된다.『논어』에서 예를 들어 본다.
“ (공자는) 술은 일정한 양이 없으셨는데,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셨다.”①
다시 말해 공자는, 주량에 정한 바가 없고 단지 취할 때 까지는 마시지 않았다는 해석이다.② 아래와 같이 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술만은 일정한 양이 없었으나, 난잡하게 되는 일은 없으셨다.➂
부사(唯)를 정확히 했고 란(亂)의 뜻을 마음이 어지럽다, 취하다 대신 난잡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띄어 읽은 바는 같다.
이 구절의 원문은 ‘유주무량불급란(唯酒無量不及亂)’인데 ‘유주무량 하시되 불급란 이러시다’ 로 띄어 읽은 것이다. 즉 ‘유주무량, 불급란(唯酒無量, 不及亂)’으로 읽은 것이다.
그런데 술 마시고 취하지 않은 사람 있고 취하고서 취했다는 사람 있을까? 따라서 아래와 같은 해석도 가능 하다고 본다.
“ (공자는) 술에 일정한 양이 없으셨는데, 부족하면 난동을 부렸다.”
이렇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띄어쓰기만 바꾸면 된다.
즉 ‘유주무량, 불급란(唯酒無量, 不及亂)’을 ‘유주무량, 불급, 란(唯酒無量, 不及, 亂)’으로 불급(不及)에서 끊어 주면 된다. 이렇게 해석하는 나를 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과거 띄어쓰기 없이 글을 쓴 이유는 경제적인데 있다. 글을 쓰는 재료인 목간, 목판, 종이 등이 만들기 힘들고 귀해 최대한 절약하기 위한 것이다.④
그런데 오늘날 맨땅에 의미 전달을 위해 글을 쓰는데도 같은 현상을 발견했다.
"임시가복구" 무슨 뜻일까? 내가 이 글을 처음 보고 생각한 것은 "임 씨가 복구하는구나!"였다. 선거 때라 이런 걸 썼나? 그런데 복구(復舊) 한다는 것인가? 복구했다는 것인가?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보도블록이 제대로 깔린 곳이 있고 시멘트로 대강 덮어 놓은 곳이 있으며 이 글은 시멘트 포장 위에 여러 곳 찍혀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공사 중에 임시(臨時)로 잠깐(假) 해 놓은 것이니 공사 끝나면 제대로 다시 보도블록 깔아 놓겠다' 정도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임시가복구'라고 써 놓은 것 같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유주무량불급란(唯酒無量不及亂)’을 “ (공자는) 술에 일정한 양이 없으셨는데, 부족하면 난동을 부렸다.”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제정신이 아닐까?
아니면 '임시가복구'를 '공사 중에 임시(臨時)로 잠깐(假) 해 놓은 것이니 공사 끝나면 제대로 다시 보도블록 깔아 놓겠다'로 이해해 주길 바라는 사람이 제정신이 아닐까?
아니면 내가 또 뭔가 해석을 잘못한 것인가?
이른 아침 출근길에 암호와 같이 나타난 '임시가복구'를 자꾸 되뇌다 보니,불현듯 점심 메뉴로 볶음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①『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194.
원문은 다음과 같다. 唯酒無量不及亂
② 주자의 해석이다. (ibid. pp.194-195)
양백준도 주자의 해석을 따르고 있다. 杨伯峻,『论语译注』,中华书局,北京,2009. p.102. 양백준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只有酒不限量, 却不及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