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조리기능사 필기시험 합격기
여자는 나이가 들며 에스트로겐이 감소하고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한다고 한다. 즉 여자는 남성화되고 남자는 여성화된다. 내 경험에 따르면 여자는 수염 나기 직전까지 남성화되고 남자는 딱 가슴이 커지지 직전까지 여성화된다.
그래서 생기는 가장 불편함이 '밥'이다. '밥은 여자의 의무이며 때가 되면 당연히 줘야 하는 하늘이 정한 도리이다'라는 명제가 점점 미친놈 헛소리가 돼간다. 결국 남자와 개는 같아진다. 주면 감사히 먹고 안 주면 여기저기 킁킁거리고 다닐 수밖에 없는 숙명의 길을 걷게 된다.
나는 공자도 당연히 이러한 길을 걸었다고 확신한다. 아무리 폼 잡고 사교육 업계의 일타 스승을 자임한다 하더라도 밥을 안 주는데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은 공자나 나나 매 일반 아니었을까?
공자께서 시냇가에 계시면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도다.”①
마누라가 밥을 안 줘서 밖으로 나와 시냇가를 어슬렁거리는 공자나 같은 이유로 양재천변을 빌빌 거리는 나나 운명공동체적인 동질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걸 가지고 "시냇물은 도체의 본질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으니......."②운운해봐야 절대 밥 안 나온다.
결론은 양자택일이다.
첫째는 노예의 길이다. 밥을 위해 굴종과 핍박을 감내하며 끊임없이 꼬리를 치고 비위를 맞추며 마누라 주위를 맴도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사는 몇몇 인사를 알고 있다.
둘째는 독립의 길이다. 즉 내 밥은 내가 해 먹을 수 있는 자주 급식의 역량을 배양해, 외세의 간섭을 물리치는 고난과 역경의 선택이다. 이런 결정을 전문용어로 '독립운동'이라고 한다.
나는 2021년 12월 한 달을 잠을 설쳐가며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임들의 발자취를 따라 독립운동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안중근이 그랬고 백범이 그랬으며 매헌이 그랬던 것처럼 치밀한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수십 년 실전을 닦은 적(마누라)을 제압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따라서 한식은 패스!
일식이나 양식은 재료도 낯설 뿐 아니라 솔찬히 비싸 보였다. 하지만 중식은 달랐다. 자장면, 짬뽕 싫어하는 사람 많지 않고 탕수육과 고추잡채 마다하는 사람 보지 못했다. 그래서 <중식>을 목표(Target)로 설정했다.
내가 음식, 그것도 중식을 한다고 하면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 따라서 국가가 인정하는 <중식 조리기능사> 자격을 획득해 공신력을 담보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된다면 확실한 '비대칭 전력'을 구축할 수 있다는 심모원려인 것이다.
아무리 첨단 무기로 무장해봐야 핵을 가진 상대에게는 함부로 나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궁극적으로 당당하게 밥 얻어먹고 가끔 이름도 생소한 '청요리'를 제공하며 생색낸다는 작전이다.
<중식 조리기능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필기시험을 합격해야 한다. 암기과목과 객관식에 단련됐다는 이유로 필기시험을 우습게 본다면 망하기 딱 좋다. 위생, 보건, 감염 병, 기생충 등등으로 이루어진 필기시험 과목은, 보고 공부하면 붙지만 안 보고 붙을 수는 절대 없게 돼있다.
나는 우선 필기시험 응시부터 했다. 응시료를 내는 것 포함해 모두 인터넷을 이용해 접수했다. 시험은 2022년 1월 19일 서울 서부 국가자격시험장 CBT1실에서 시행되는 2022년 첫 시험이었다.
시험을 접수한 그날부터 출, 퇴근길에 꼭 서점에 들러 조리기능사 필기시험 교재를 꼭 한 꼭지씩 숙독했다. 그리고 서점에서 읽은 부분은 유튜브에서 찾아 강의를 시청했다. 강의를 들으며 나름 꼼꼼히 노트를 하며 정리하고 외우는 것을 반복했다.
2022년 1월 19일은 가장 눈이 많이 온 날이었다. 나는 트레킹화를 신고 백팩을 메고 구파발 역 1번 출구를 나와 시험장을 향했다. 그리고 시험을 쳤고 아주 우스운 성적으로 합격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어쨌든 합격은 합격이다!
하늘 위에서 내리는 눈이 나의 국가자격시험 필기시험 합격을 축하해주기 위해 내린다는 합리적인 생각을 했다.
①『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175.
원문은 아래와 같다.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昼夜
② ibid., pp.176-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