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역곡역에서 북쪽 광장으로 나와 모퉁이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잠시 가면 2층에「영혼이 깨끗한 거지」라는 커피숍이 있었다. 보통 지하실에 있고 가운데 큰 어항이 설치된 ‘다방’과 차별화된 인테리어가 당시에는 좋아 보였다.
1990년, 나는 학사경고를 받고 쫓기듯 입대했다 제대한 후, 빵꾸난 교양 학점을 따려고 애쓰던 예비역 4학년이었다. 그리고 그분은 놀 거 다 놀면서도 과 수석이냐 단대 수석이냐의 교만한 고민에 빠졌던 여대 4학년이었다. 이 둘은 거의 매일 「영혼이 깨끗한 거지」에서 쓸데없는 대화를 나눴다.
당시 커피를 주문하면 가루 커피를 더운물에 녹여주고 역시 가루로 된 ‘프리마’와 설탕이 제공됐다. 나는 설탕과 ‘프리마’를 넣고 잘 저어 녹여주며 그분께 진상했다. 그분은 그 커피가 맛있다고 했다.
새들은 발정기가 되면 수놈이 먹이를 물고 와 암새 앞에 놓고 삐리리~ 삐리리~ 하면 암새가 화답한다. 그때 우리가 했던 짓은 새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 오는 날에는 왠지 아늑한 느낌이 들 것 같아 설탕을 좀 더 넣었다. 그분은 그런 손길에 미소로 답했다. 가루로 된 프리마는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말을 주워듣고 적은 양만 넣고 그분께 설명드렸다. 그분의 눈은 행복으로 빛났다. 삐리리~ 삐리리~가 성공한 것이다.
어느새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영혼이 깨끗한지는 모르겠으나 사업이 엉망이되 거지에 매우 근접한 상태가 되었다. 내가 내린 합리적 추론은 결혼 전 그분을 만나 「영혼이 깨끗한 거지」를 드나든 것이 사업이 망한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잘못하다간 그분이 과부 될 수 있는 일이다.
작고 반짝이며 조신했던 그분은 빗자루와 검고 긴 모자가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했다. 눈이 마주치면 살며시 웃거나 머뭇거리며 피하던 행동은 눈을 희번덕 치켜뜨며 “뭐?” 하는 반문이 자연스러워졌다.
「영혼이 깨끗한 거지」와 같은 커피숍은 이미 멸종했다. 그 대신 ‘커피 전문점’들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있을 정도이다.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방법으로 못살게 덕은 커피콩을 웅장한 소음을 내며 그라인더로 갈아내고 고압으로 추출한다. 여기에 우유 등 다양한 재료를 더해 원하는 취향에 맞추어 제공된다. 영어, 이태리어, 불어, 그리고 한국어가 뒤섞인 메뉴는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커피 전문점에 갈 때마다 작아지는 나 자신이 싫었다. 특히 그분과 같이 갈 때면 과거처럼 내가 주문해 맛있게 가공해 주기는커녕 노상 ‘아메리카노’를 외치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달달 한 걸 좋아하는 그분은 나의 추천을 바라는 눈길을 보내지만 나는 짐짓 딴청을 해야 하는 비겁함이 싫었다.
어쩌다 큰맘 먹고 다른 메뉴에 도전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맛에 대한 경험이 없어 기대치 설정이 불가능하다. 즉 주면 주는 대로 마실밖에 다른 선택은 없다.
그야말로 영혼이 허전한 거지꼴이 된 것이다.
나는 내가 주도하지 못하는 나의 삶을 긍정하는 비참함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 생각도, 내 입맛도, 내 의지도 없이 그저 주눅 든 목소리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보잘것없고 무력한 삶을 거부하기로 한 것이다.
불과 30년 전 「영혼이 깨끗한 거지」에서의 나는 모든 것을 주도했고 그분은 영민하고 아름다운 나의 짝이었다. 이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커피 전문점을 「영혼이 깨끗한 거지」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