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위에 장사 있다고 하지만, 장사를 하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한다. 그것도 상대의 동의를 유도할 수 있는, 의도를 포함한 말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하지만 그 의도가 드러나지 않게, 또는 드러나더라도 불쾌하지 않게 해야 한다. “언어를 총탄과 같은 것으로 믿고 그래서 말하는 행위가 표적을 향해 당기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같이 생각한다”①면 과녁 없는 언어는 공허하다.
내가 나의 이익을 셈하듯, 상대는 상대의 이익을 헤아린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말하는 것이 상대의 가슴에 가 닿지 못하고 상대의 말도 다르지 않은 경우가 있다. 설령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전달되는 진실의 양은, 말하는 진실의 양과 같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리라.
그래서 말을 많이 한 날 고단한 것은, 몸을 많이 써서 그런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설탕 바른말이 잘 전달돼 몇 푼 이익을 만든 날은 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바라던 것을 얻었지만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떠난 느낌이다. 애써 정성스레 준비한 진솔한 말들이 너무나 가볍게 기각될 때는, 어디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 그저 멍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논어』를 여러 번 읽다 보면 가끔 공자를 만난다는 착각을 한다. 어쩌면 공자 할배도 지금 나 같은 생각을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도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을 말로 전달했을 때, 허탈했거나 멍 때리고 싶은 느낌을 여러 번 받았던 것이 틀림없다.
활쏘기는 과녁을 맞혀 뚫는 것에 주력하지 않는데, 힘쓰는 정도가 같지 않음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옛날의 도다.②
공자가 활 쏘는 법(弓道)을 말한 것으로 이해해도 반대하지 않겠다. 하지만 내 생각엔 공자는, 발화자(말하는 사람)와 청화자(듣는 사람)가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말'에 대한 표현이라고 확신한다.
장사 초창기에 검은색 삼단 이민 백에 샘플을 잔뜩 담고 질질 끌면서 상담을 다녔다. Jusco에 납품할 오더 수주를 위해 오사카를 방문했을 때, 내 경쟁자의 유려한 일본어 능력을 보며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꼈다. 나는 다른 나라 말은 매우 잘하는데 유독 일본어는 잘못한다. 읽고 쓰지 못할 뿐 아니라, 발음, 문법, 어휘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지시 대명사를 혼동했고 (이것을 저것이라고 했다) 납기를 '작년'까지 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 달'이었다)
경쟁자에 비한다면 내가 날리는 화살은 매우 작고 빈약하고 초라했다. 과녁을 뚫기는커녕 도달하기에도 힘겨운 화살을 진땀을 흘리며 날리고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전력 질주하면 목에서 피 냄새를 느낄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내 앞에 와서 떠든 사람 중에 너처럼 일본어가 엉망인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너만큼 말을 오래 한 사람도 없었다. 오더는 네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Yano 사장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만 골라 위와 같이 말했다. 내가 사용했던 단어만 사용했던 것이다. 틀린 것은 틀린 그대로!(그래서 모두 웃었지만 나는 그 이유를 한 참 고민했다.)
말은 하는 사람이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는 사람이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다. 화살을 잘 쏘아 과녁에 적중시킨다고? 과녁이 날아가는 화살의 낙하 위치를 쫓아갈 수도 있다.
진심, 진실, 충심, 사랑 등등 물리적인 힘 말고 다른 어떤 것이 순수하게 임할 때, 언어 말고 다른 것이 마음을 통하게 한다. 그 순간 언어는 도구적 속성의 제자리로 돌아가 찌그러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