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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두교주 Jun 12. 2024

화이부동, 동이불화 그리고 만한전석

제13편 자로(第13篇 子路) - 23

  지구상 가장 위대한 ‘뻥’을 꼽으라면 중국 뻥과 인도 뻥을 당할 뻥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인도 뻥은 현실감이 좀 떨어지는 반면 중국 뻥은 매우 그럴싸해서 속아 넘어가기 딱 좋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중국 뻥은 매우 논리적으로 역사적 기원을 가진 것으로 포장되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8대 명주(名酒)」와 같이 마치 외우지 못하면 바보처럼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중국의 8대 명주를 다 아는 사람도 없고, 통일된 8대 명주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8대 명주가 필요한 이유는 각기 자기 동네 술이 좋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이름난 술을 들러리 세우는 작전에 불과하다.      


  중국 음식도 그와 다르지 않다. 「중국의 4대 요리」는 동네에 따라 다르다. 즉 객관적 실체는 없다. 하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중국 요리의 집합이 「만한전석(滿漢全席)」이라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만한전석」은 만주족(여진족)과 한족(짜장면)의 진귀한 요리는 모두 모아 놓은 것이다. 만주족의 바비큐 요리인 소고석(燒烤席)과 디저트류인 발발(餑餑)은 물론, 위대한 중화 민족의 요리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붕어의 혀와 삶은 곰 발바닥(鯽魚舌燴熊掌)’, ‘술 지게미에 잰 성성이(원숭이) 입술(米糟猩脣)’, ‘돼지 뇌 탕(猪腦羹)’, ‘낙타 등 찜(烝駝峰) 그리고 너구리 고기 찜(梨片拌烝果子狸) 등이 그것이다.①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와 같이 메뉴에 집중하는 동안, 지나가는 곰을 보지 못하는 데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와 같은 「만한전석」은 어떤 문헌에도 정식으로 기록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즉 최소한 황실의 공식적 메뉴 또는 연회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즉 결국 또 하나의 중국 뻥에 당한 것이다.     




  그런데 「만한전석」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만주족과 한족의 음식을 섞어놓고 마치 최고의 상차림인 것처럼 친 뻥인데, 만일 존재했다면 참으로 군자의 상차림이라고 할 만하다. 서로 어울리는 음식은 아니지만, 서로 상대의 음식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모습은 의리를 숭상하는 군자의 모습과 닮았다.     


군자는 화해를 이루지만 동화되지 않는다.     


  의리를 숭상하는 사람들을 군자라고 하니, 당연히 옳은 일에는 조화를 이루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같은 무리로 휩쓸려 개 짖는 소리보다 못한 소음을 내는 일은 없다는 해석도 탁월하다.③     


  그런데 자기 것만 무조건 옳고 상대의 것은 무조건 나쁘다고 박박 우긴다면 어떻게 될까? 공자는 당연히 소인의 짓거리라며 특유의 낙인찍기를 멈추지 않는다.     


소인은 동화되지만, 화해를 이루지 못한다.     


  동화는 되는데 화해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소인은 항상 이익을 숭상하기 때문이다”⑤ 이익 앞에서 옳고 그른 것은 절대 중요하지 않다는 발상은 지금에서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사실 「만한전석」의 상상은 만주족, 한족의 차이, 신분 고하를 구분하지 않고 65세 이상 노인 1,000명을 황궁으로 초대해 베푼 연회(千叟宴)에서 비롯되었다. 국가와 사회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의리) 맛있는 음식으로 노인들을 꼬시는(이익) 대화합의 장! 어쩌면 군자와 소인의 대립관계를 변증법적인 발전, 승화 관계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역사적 힌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무리 그대로 그렇지, 이상한 거는 좀 안 먹는 게 좋겠다. 또 돌림병 돌까 무섭다.     



대문그림 : 만한전석의 상상 (출처:https://zrr.kr/od9z , 검색일: 2024.06.12)

① 김민호, 이민국, 송진영 외 『중화미각』(주)문학동네. 경기, 파주. 2019. p.316.

② 리링(李零) 지음, 김갑수 옮김『집 잃은 개, 丧家狗 2』(주)글 항아리. 경기, 파주. 2019. p.762. 원문은 다음과 같다. 君子 和而不同.

③ 주자 집주와 도올 김용옥의 해석을 참고했다.

④ ibid. 원문은 다음과 같다. 小人 同而不和

⑤ 成百曉 譯註『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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