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 위령공편 (第十五 衛靈公篇) - 10
중국에서 생활할 때 나는 항상 반대편을 본다. 누군가 무척 싼 것을 보여주면 가격 이외의 다른 것을 살핀다.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주머니(지갑)를 단단히 여민다. 누군가 뭔가를 급히 해야 한다면 중요한지를 가늠해 본다.
착한 사람이 복 받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에 훈육된 내가 이렇게 변한 이유는 중국 사람들의 삶과 생각이 우리와는 전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마다『삼국지』를 읽고 난 후 느낌이 모두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평범하게 사는 중국 사람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남, 여, 노, 소, 상, 하, 귀천 구분 없이 거짓말은 기본이고, 상대의 심리를 읽어가며 잔 대가리를 굴리고, 있는 뻥 없는 뻥을 창조적으로 쳐대는데, 나 같으면 정신 사나워서 그렇게 살라고 해도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사람들은 남을 속일 때 대부분 역사를 인용한다. 우리나라 약장사가 약 팔 때 꼭 『동의보감』을 인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점은 우리나라 약장사는 『동의보감』을 읽어보지 않고 약을 팔지만, 중국 사람들은 진짜 역사책을 읽고 뻥을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의 뻥은 객관적 타당성이 있는 것 같고, 정말 진짜 사실과 같은 강력한 침투력을 가진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중국의 역사 자체가 뻥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어차피 역사는 100% 진실일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주도면밀하게 수 천년 간 지속적으로 역사에 뻥을 주성분으로 기록하는 나라는 중국 이외에는 없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공자가 있다.
『논어』에도 공자의 역사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여러 곳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
하나라의 역법을 쓰고, 은나라의 수레를 타고, 주나라의 예관(禮冠)①을 쓰되, 음악은 소(韶)와 무(武)를 쓰며, 정나라 노래는 몰아내고, 간사한 자들은 멀리한다. 정나라 노래는 음탕하고, 간사한 자들은 위태롭기 때문이다.①
좋은 거 골라 쓰자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왜 좋은지가 비밀이다. 정나라 노래 음탕 여부와 사람이 간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공자 맘이다. 지들 말고는 다 오랑캐로 단정하는 것만큼 용감하다. 이런 불균형하고 객관적이지 못한 공자의 역사관이 정교하게 구체화된 것 중 하나가 『삼국지』의 뻥이 아닐까?
『삼국지』에서 가장 폼나게 묘사되는 관우는 항상 책을 들고 설친다. 『춘추(春秋)』라는 역사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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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글이다. 일독을 권한다.
공자가 처음 이 제목을 사용한 이래 『춘추』는 역사를 폼나게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 그리고 공자의 역사 서술 방식을 ‘춘추필법(春秋筆法)’, 이라며, 비장한, 엄숙한 뭔가가 있는 것처럼 부른다. 그런데 ‘춘추필법’은 역사 왜곡의 시초이며, 역사와 뻥의 잡종이며, 역사보다는 소설, 또는 정치적 선전, 선동 자료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춘추필법’은 정의로 포장된, 사실 왜곡의 이데올로기가 도사리고 있다. 좋게 말해 ‘사실을 있는 대로 기록한다②’는 점이다. 다만, 어버이의 잘못을 감추고(孝), 존귀한 자의 쪽팔림을 숨겨(忠) 의로움(義)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결국 의로움의 기준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우리 편이냐 아니냐에 있다.『삼국지』의 가장 큰 특징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편을 딱 정해놓고 변치 않는다는 점이다.
이 더운 날 10권이나 되는 『삼국지』 다시 읽기를 마치며 긴 한숨이 나왔다. 후텁지근하고 답답한데 「갓쉰동전」③이나 읽어 머릿속 환기나 시켜야 할 것 같다.
대문 그림 : 1980년 말 읽었던 이문열 『삼국지』다. 이번에 10권을 전부 다시 읽었다. 『삼국지』는 젊어서 읽으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고, 늙어서 읽으면 눈이 가자미 눈으로 바뀌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잘 읽어야 한다.
① 김학주 역주 『논어 論語』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서울. 2009. pp. 268-269. 원문은 다음과 같다. 行夏之時, 承殷之輅, 服周之冕, 樂則韶舞, 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殆.
② 사마천 지음. 신동준 옮김 『인물들의 흥망사 완역 사기열전 Ⅰ』 ㈜위즈덤하우스. 서울. 2015. p.10.
③ 이 책에 대강의 내용이 있다. 신채호 지음, 김종성 옮김 『조선상고사, 국사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역사』 ㈜위즈덤하우스. 경기 고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