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 자한 편(第九 子罕 篇) - 27
드디어 낮 최고기온이 30도 아래로 내려갔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덥던 여름이 확실히 가고 있다. 바야흐로 향과 색이 짙게 가라앉은 대구리 큰 꽃 국화의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뭇 꽃이 다투어 피어나던 봄, 여름 마다하고 찬 서리 시린 가을날 고고히 피어나는 국화는 시절 분간을 제대로 못 한다는 점에서 나를 닮은 것도 같다. 딴 거 안 먹고 국화만 따 먹으면 1,700년을 산다는 말도 있으니, 그렇게 까진 안되더라도 올가을엔 국화주 한 잔, 걸게 해야겠다는 다짐은 해본다.
내친김에 국화 피는 가을을 지나 소한·대한 추위를 상상해 본다. 오싹하는 건조한 느낌이 싸하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중에 시듦을 안다①.
보통 세월 좋을 때는 그놈이 그놈이지만 일단 유사시(가난해지거나 나라가 어지러울 때)가 되면 군자를 알아볼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도 그가 다녀간 흔적을 남긴 추사 김정희는 송백(松柏)의 절개 대신 “추워져가기만 하는 세월에 대한 느낌”②으로 공자의 마음을 읽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 보니 점점 스산해져 갈 앞으로의 몇 달이 심란해지기도 한다. 사람의 간사함이 죽 끓는 것보다 심함이, 나는 소인의 성정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몇 번의 보름을 겪고 나면 틀림없이 진달래꽃 질펀한 봄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마 그때는 ‘징글징글한 추위’ 어쩌고 하면서 호들갑을 떨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소월의 「진달래꽃」이 어쩌고 하면서 갖은 폼을 다 잡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 아직도 「진달래꽃」에 나타난 그분이 당최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내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가 가겠다는데 내 앞길에 꽃잎을 뿌려줄 여자는 단연코 없(었)고,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결국 나는 민족의 정서와 아무런 관련 없는 삶을 사는 별종인가?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 미인이 꺾어 들고 창 앞을 지나네.
살짝 웃으며 낭군에게 묻기를,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낭군이 짐짓 장난스럽게,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미인이 그 말에 획 토라져서, 꽃을 발로 밟아 문대며 한마디 하네
꽃이 저보다 예쁘시거든, 오늘 밤은 꽃이랑 자라!③
그렇지! 내 주변의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성정을 가지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미인이 아니라는 점뿐이다.
날도 쌀쌀해져 가는데 더위 먹은 소리 그만하고 조신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얼핏 보면 소나무, 잣나무가 대단한 것 같지만 결국 그들도 시들었다. 잘난 척해봐야 결국은 추워져 가기만 하는 세월의 느낌에 속상할 일을 만드는 일인데....
계절의 작은 변화에도 촐싹이는 이 철부지를 어쩔꼬!
대문 그림 : 추사가 그린「세한도」이다(출처:나무위키. 검색일;2024.9.6.) 『논어』를 소재로 한 흥미 있는 소재의 그림이다. 이상적이라는 제자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최신 해외 서적을 구매해 장거리 탁송에 감격해 그 대가로 그려준 것이다. 나도 누가 그런 책 사주면 이 정도 그림을 그려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① 류종목 지음 『논어의 문법적 이해』 ㈜문학과 지성사. 서울. 2020.p. 317.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曰, 歲寒, 然後知松栢之後彫也
②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 발문의 말미이다. 원문은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이다.
③ 고려시대 이규보의 「절화행(折花行)」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牧丹含露珍珠顆, 美人折得窓前過. 含笑問檀郞, 花强妾貌强. 檀郞故相戱, 强道花枝好. 美人妬花勝, 踏破花枝道. 花若勝於妾, 今宵花同宿(해석은 내가 다소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