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지낼 때 왜 과일을 올려놓을까? 올 추석 차례 장을 볼 때 잘 익은 감이 없어 두 번이나 시장 걸음을 하며 다시 한번 궁금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귀신은 분명히 소화 기관이 없으므로 직접 취식은 불가능하다. 제사를 지내고 나누어 먹는 것이 목적이라면, 먹을 사람이 좋아하는 걸 써야지, 왜 비싸고 익지도 않은 과일을 올려야 할까? 혹시 공자님 말씀이라 죽어라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공자는 제사상에 과일 올려놓으라고 한 적 없다. 예(禮)의 전문가인 그는 오히려 예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더하고 덜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욕을 먹으면서도 항상 묻고, 신중히 행동했다.
공자가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묻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누가 추땅 사람의 자식이 예를 안다고 말하였는가?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묻는데!” 공자다 듣고 말하였다. “이것이 예이다”①
이렇게 공자는 고정된 예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말주변으로 사람을 제어(以口給禦人)하는 사람이 아니었다.②
그렇다면 홍동백서(紅東白西) 어쩌고 하면서 과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제사를 준비할 때 많은 비용을 강요하는 법칙은 누가 만들었을까? 『소인 논어』는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고 그 근거를 공개한다.
답은 공자가 죽은 후 수백 년 후, 한(漢) 나라 ‘숙손통’이라는 사람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당시 사건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 혜제가 어느 해 봄날 이궁으로 놀러 나왔을 때 숙손통이 이같이 말한 바 있다. “옛날에는 봄이 되면 햇과일을 종묘에 바치곤 했습니다. 지금 앵두가 잘 익어 바칠 만합니다. 원컨대 폐하가 마침 놀러 나왔으니 앵두를 따서 종묘에 바치시기를 바랍니다.” 한 혜제가 그러하겠다고 약속했다. 여러 신선한 과일을 종묘에 헌납하는 일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③
봄에 나오는 햇과일이 뭐가 얼마나 된다고 그걸 종묘에 바치나? 잘 읽어보면 알겠지만, 황제는 봄에 아무 생각 없이 놀러 나간 것이다. 당연히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는 경솔한 행동인데, 숙손통이 그걸 make up 한 것이 제사상에 과일을 올리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황제는 아무 생각 없이 놀러 나갔다가 천하의 효자가 되고, 숙손통은 어렵지 않게 잔머리 굴려 공을 세우고, 우리는 제삿날마다 과일을 사러 다니게 된 것이 사건의 진실이다.
금년 추석 차례상에 올린 과일들이다.
대문 그림 : 장을 두 번이나 봤지만 크게 잘생기고 잘 익은 감을 만나지 못했다. 그나마 좋아 보이는 감들을 데려다가 조금이라도 익으라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두고 가끔 돌려주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