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학이 편(第 一 學而 篇) - 9
『논어』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주특기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 이른바 공자의 도통(道通)을 이었다는 증자(曾子)는 효(孝)를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 그가 『논어』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그 이름도 찬란한 ‘신종추원’이다.
증자가 말했다. “죽은 자를 신중하게 모시고 먼 조상까지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다”①
이 말을 필두로 한국과 중국에서는 인륜의 근본으로 ‘효’가 부동의 최고 가치로 이 천년 넘게 확대 재생산된다. 주자는 공자 11대손 공안국의 말 중 슬픔과 공경을, 예와 정성으로 바꾼 업데이트 해석을 제시했다. 주자의 말이 조선 사회의 도그마로 기능했다는 것은 『소인 논어』에서 여러 번 언급됐다.
신종이란 초상에 그 예를 다하는 것이요, 추원이란 제사에 그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②
이러한 해석은 오늘날까지도 “평이하고 명쾌하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③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다. 효(孝)라는 것이 그렇게 강조될 문제인가? 어차피 사적인 영역의 문제인데 그걸 국가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틀림없이 무슨 꿍꿍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증자는 그가 효를 주장하는 이유를 ‘백성의 덕이 두터워지는 효과(民德歸厚矣)’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증자는 우리에게 효도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왕에게 백성들에게 효도하도록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결국 백성들에게 ‘신종추원’하라고 시키는 이유는 백성들의 덕이 두터워지기 위해서이다. 왜 백성들의 덕이 두터워져야 할까? 그래야 통치와 착취가 쉽기 때문이다.
백성이 주인이며, 지도자는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현대 민주주의적 시각에서 본다면 매우 불쾌한 이론이다. 그런데 아직도 누군가는 ‘신종추원’ 어쩌고 하면서 사람이 해야 할 당연한 도리처럼 떠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17세기 후반에 ‘신종추원’에 대한 주자적 해석을 통렬히 반박한 사람이 있었다. 물론 그도 공자를 좋아했고 『논어』를 읽었고 한문을 썼다. 그는 예(禮)가 지배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편하게 하기 위한 것(爲安民而說故爾)’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300년 전에 떠들었다. 물론 주자의 해석이 틀렸다고 깔끔히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왕의 예(禮)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제정했기 때문이다. 주자의 주석에서 ‘귀(歸) 자의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④
심지어 주자를 포함한 후세 유학자의 잘못을 적시하며,『논어』를 지배층이 폼 잡고 몸을 닦는(修身-수신)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일갈하고 있다.
대체로 후세의 유학자들은 선왕의 도를 알지 못하여 『논어』를 매 장마다 모두 몸을 닦는 방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잘못 해석하고 있다⑤
’ 신종추원‘의 논리는 잘못하면 죽은 사람을 이용해 산 사람을 잡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사용했고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나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일까? 친일파일까? 사문난적이나 친일파는 나쁜 것인가? 죽은 사람을 이용해 산 사람을 잡거나, 친일을 이용해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이 더 나쁜 거 아닌가?
대문 그림 : 페이스 북에서 얼핏 보고 울컥한 마음에 간직해 놓은 묘비이다. '신종추원'과는 결이 다르다.
① 리링(李零) 지음, 김갑수 옮김『집 잃은 개, 丧家狗1』(주)글 항아리. 경기, 파주. 2019. p.71. 원문은 다음과 같다. 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② 成百曉 譯註『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25.
원문은 다음과 같다. 愼終者는 喪盡其禮요 追遠者는 祭盡其誠이라. 반면 공안국은 이렇게 말했다. 愼終者, 喪盡其哀也 追遠者, 祭盡其敬也. (굵게 표시한 부분이 다르다)
③ 도올 김용옥 지음『논어한글역주 1』 통나무. 서울. 2019. p.349.
④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지음 이기동, 임옥균, 임태홍, 함현찬 옮김 『논어징(論語徵) 1』 소명출판. 서울. 2010. p.100. 원문은 다음과 같다. 先王之禮, 爲安民而說故爾. 朱註, 歸字不穩.
⑤ ibid. p.100-101. 원문은 다음과 같다. 大抵後儒不知先王之道, 以論語章章皆修身方法, 所以失之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