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의 시골집은 집 앞에 포도밭이 있는 상태에서 샀다. 가을에 포도밭을 보니 보기엔 참 좋았는데, 막상 어른들이 포도나무 건사를 하려고 하니 무척 성가시고 전문적인 농업 기술이 필요한 작물이라고 하셨다. 편한 노후를 위해 시골집을 장만했는데 오히려 힘이 드시는 것은 말이 아니라 포도나무를 전부 뽑았다. 그리고 집 앞 가까운 곳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텃밭 농사 정도만 가꾸는 것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포도밭이 넓게 있었는지라 비닐하우스 뒤로는 비교적 넓은 공터가 생기고 말았다.
나는 추운 겨울에 보름이를 알뜰하게 챙기는 상태를 볼 때 이미 알아 봤었다. 그 난봉꾼 상태가 뼈대 있는 집안의 아기씨를 못 알아 볼 리가 없었을 것이다. 봄이 지나 초여름에 들어설 무렵 드디어 상태는 욕심을 채웠고 보름이는 임신을 했다. 색시가 임신을 했는데도 어느 틈에 줄을 풀고 부지런히 마실을 다니며 가는 곳마다 여러 종류의 사고를 치던 상태는 장인께서 아침에 드실 잘 익은 토마토를 먼저 따먹다 현행범으로 체포돼 그날로 집을 떠났다.
그래서 보름이는 유복자를 출산하는 신세가 됐다. 보름이가 낳은 새끼는 세 마리였는데 날 때부터 개털이 보다 컸다. 얼마나 의젓하고 복스럽게 생겼는지 쳐다보면 그냥 웃음이 나왔다. 이윽고 녀석들이 눈을 뜨고 꼬물꼬물 밖으로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분양요청이 들어왔다. 천하 호인이신 장인께서는 물론 전부 허락하셨다. 나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두 마리는 벌써 분양을 가고 딱 한 마리가 남은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내를 불러 한 마리는 팔지 말고 우리가 키우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사실 외딴집에 가까운 외진 곳에 있고 터가 비교적 넓은 집인데다가 산이 가까워 저녁 외식을 하고 돌아오다 보면 고라니가 길 가운데 서서 쳐다 보기도 하고 집 텃밭을 노리고 멧돼지가 출몰 하기도 하는 터라 보름이 한 마리로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던 참이다.
아내와 이야기가 잘돼 좋은 마음으로 나가 강아지와 보름이와 한동안 놀다가 낮잠을 느긋하게 잤다. 하지만 그동안 불행은 도둑처럼 다녀갔다.
나는 잠이 들고 아내는 장모님과 장을 보러 간 사이 토실한 강아지 녀석은 아장아장 문 쪽으로 기어갔고 마침 분양을 조르러 오신 어르신이 기어 나온 강아지를 발견해 품에 안고 장인을 찾으셨다. “이놈이 내게와 살려고 마중을 다 나오네” 인사말을 겸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시는 이웃 노인에게 거절할 말씀을 찾지 못한 장인께서는 더 좋은 웃음을 지으시면서 “아주 좋은 종이니께 잘 키우소!” 하시며 배웅까지 하셨단다. 그 날 밤 낮잠을 잔 영향인지 밤에 잠을 못 이루다가 설핏 잠이 들어 마지막으로 분양간 토실한 그 녀석과 노는 꿈을 꾸었다.
시골집에서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올 때 보니 포도밭 자리에 군데군데 막대기가 꽂혀 있었다. 강아지 분양 받아 가신 분들이 보름이 간식이라도 사주라고 성의 표시 하신 것을 가지고 장인께서 빈 땅에 감나무 묘목을 심으신 것이다. “저 막대기에 언제 감이 맺힐까?” 하고 피식 웃고 말았는데 나는 몇 년 후에 그 경솔한 비웃음에 톡톡히 치도곤을 당했다.
감 수확이 그렇게 힘든지 몰랐고, 감 값이 그렇게 싼 줄 처음 알았다. 하루 종일 감 수확을 하고 박스에 포장하고는 그중 잘 익은 감 하나를 골라 보름이에게 주었다. 보름이는 항상 그렇듯 큼직한 입으로 잘도 먹었다.
** 윗 사진설명 : 칸트와 테스.
보름이는 2019년에 갔다(죽었다). 그 이후에 가능한 보름이 닮지 않은 강아지를 택해 데리고 온 것이 두 마리다. 이름을 지어야 할 때를 놓쳐 요놈들은 이름이 없고 그냥 ‘두 마리’라고 불렀다. 그러다 ‘나훈아’가 테스형을 발표했고 거기에 영감을 얻어 항상 심각한 표정의 작은놈이 테스가 되었다. 그 결에 큰놈도 말결이 비슷한 철학자의 이름을 얻었다. 둘은 자매 지간이다. 개털이와는 워낙 나이차이가 많아 행동 양식이 완전히 틀려 이렇다 할 접촉은 없었다.
** 아랫 사진 : 시골집 비닐 하우스 앞 막대기에 감잎이 제법 매달렸다.
감 따기.
보름이 새끼들이 변한 감나무.
어느새 감히 실하게 열렸다.
감 수확이 그렇게 힘든지 몰랐고, 산지 감 값이 그렇게 싼 줄 처음 알았다. 하루 종일 감 수확을 하고 박스에 포장하고는 그중 잘 익은 감 하나를 골라 보름이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