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개털기 02화

들어가는 말

by 누두교주

1.

개털은 2004년 3월 18일 서울시 송파구 송파동의 한 아파트 7층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에서 기르던 ‘탱이’를 엄마로, 이름은 잘 모르지만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주인에겐 돈을 벌어주고 자신은 즐기는 것을 직업으로 한 어떤 포메라니안 종이 아빠였다.


개털이는 검둥이, 반달 이를 자매로 한 암컷이었고,수놈인 얼큰이가 오빠였다.

하지만 개털이는 딸아이를 경쟁관계에 있는 언니로, 서로 한 발쯤 떨어져 데면데면한 하지만 속으로 싫지 않은 아들아이를 오빠 또는 동생으로 삼았다. 아이들과 개털이는 수선스럽게 놀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개털이는 개털의 데미안이자 베르테르인 내 아내를 엄마로 정했다.

개털이가 볼 때 덩치도 제일 크고 눈치를 보니 힘도 셀 것 같아 보이는 나는 공자(孔子)가 귀신을 보듯, 존경은 하되 멀리 하는 태도를 취했다(1).


그냥 쉽게 말하자면 개털에게 있어서는 엄마인 내 아내는 자신보다 중요한 존재였고, 애증관계인 딸아이와 아들아이와는 한 치 관계, 나는 한 치 더 떨어진 ‘두 치’로 삼은 것이다. 개털이의 삶은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나 두 치와의 생활이었으며 개털이는 단 한순간도 이들을 배신하거나 떠난 적이 없었다.


19세기 미국에도 개털이 와 같은 개가 틀림없이 있었다. 조쉬 빌링스(Josh BBillings)가 강아지에 대해 아래와 같이 표현한 것은 그 좋은 근거이다.


“강아지는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자기 자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A dog is the only thing on earth that loves you more than he loves himself."

2.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동물과 동물을 이야기하는 많은 담론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람들의 시각에서 말해진 내용들이다.


아주 적은 경우가 동물의 시각으로 동물을 보고 사람들의 시각과 언어를 이해한 상태에서 동물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접한 대표적인 예가 제인 구달(Jane Goodall. 1934~)의 경우이다. 그녀의 책을 읽어보면 ‘아주 영리한 그렇지만 위험하지 않은 침팬지’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유튜브에서 접하는 그녀의 강의를 듣다 보면 마치 자연의 일부로 사는 침팬지가, 문명 속에서 자기 자신마저 망각하고 사는 인간들을 일깨우는 것과 같은 착각에(어쩌면 착각이 아니라 사실일 수도 있다) 빠지게도 한다. 그녀의 책이나 강의는 수식이나 은유 또는 전문적 지식의, 올려다보지 못할 고매함은 놀라울 정도로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는 그대로의 모습, 침팬지의 시각에서 그녀의 시각에서 그리고 그것들이 소통하는 과정을 대자연을 배경으로 담담히 설명하는 것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은 비밀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전혀 비교의 대상의 될 수 없겠지만 동물을 관찰해 보면 그들은 비밀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때가 있다. 누구에게도 감출 것이 없는 삶을 사는 존재는 참으로 멋진 대 자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만일 제인 구달에게 비밀이 있다면 침팬지나 그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과 문명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빌 브라이슨은 '밀림의 정글에서 석기시대의 생활을 하던 원주민을 대도시의 높은 빌딩, 비행기, 자동차 등 그들의 단순한 삶과 전혀 다른 세계를 보도록 했을 때 오줌을 함부로, 그리고 일제히 누었다'는 것을 읽었다고 한다. 빌 브라이슨 역시 불과 몇 일간의 자연 속의 생활(애팔래치아 트레일 경로를 걷다)을 하다가 현실의 세계, 즉 도회지로 나왔을 때 불쾌한 느낌을 받았고 오줌을 갈겼다.


"주유소와 월마트, K-마트, 던킨도너츠, (중략) 끔찍한 상업적 세계의 끝도 없이 펼쳐진 현란함 들이 존재한다........(중략) 대초원 크기만 한 주자창이 딸린 쇼핑몰을 바라보며 (중략) 함부로, 일제히 오줌을 갈겼다."(2)


제인 구달의 가늘고 다소 높은 톤으로 우리가 당연히 했어야 할 일들을 하자고 간절히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 ‘무척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자연의 험한 환경에서 침팬지를 관찰하는 그녀는 오히려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대도시의 문명인들에게 침팬지와 자연을 이야기하고 그들과의 조화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겠지만 그리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가 강연을 위해 세계 각지의 대도시를 여행하며 어쩌면 매번 오줌을 갈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은 내 미천한 지적 수준만의 문제일까?


데스먼드 모리스(Desmond Moris.1928~)의 털 없는 원숭이(The Naked Ape)를 읽고는 신경질 나서 막걸리를 많이 마시고도 잠을 못 잔 기억이 있다. 인간을 정확한 위치(영장류 중의 하나)에 가져다 놓고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는데 도저히 동의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여러 곳 있었지만 떼쓰는 방법 외에는 합리적인 반대 논리를 구성할 수 없었다.


다만 하나 위로가 되는 것은 제인 구달이나 데스먼드 모리스는 매우 훌륭하고 그래서 유명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모두 엄청난 대학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책도 많이 쓰고 TV에도 많이 출연한 스타급 지식인이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것은 지당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겸손하게 그들의 지식을 소비하며 잠깐 동안 자연을 생각하고 동물을 생각하고 지속 가능한 함께 사는 지구라는 거룩한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뿌듯해하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될 뿐이다. 우리는 평생 침팬지를 그들의 서식지에서 볼일도 없을 것 같고, 우리가 193종류의 원숭이와 유인원 중의 하나라고 하지만 우리 외에 다른 유인 원종과 삶이 섞일 일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은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먼 나라의 이야기로 여겨지게 한다. 그래도 제인 구달을 알고, 데스먼드 모리스를 알고 빌 브라이슨이 걸었던 숲길을 양재천 옆 산책길과 견줄 수 있다는 정도만 해도 너무 대견하지 않은가?


3.

하지만 개털이 이야기를 하면 아주 다른 이야기가 된다. 우선 개털이가 아주 보잘것없는 잡종 강아지이다(물론 우리가 볼 땐 예쁘다). 멸종 위기에 처한 보호 대상도 아니고 대자연속에서 호흡하는 야생 생물은 더욱 아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산책 나온 강아지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나는 두 치인 관계로 감정이 개입할 개연성이 그만큼 적고 배 나오고 머리숱이 줄어드는 전형적 아저씨 (그래도 내 몸매는 비치볼 또는 복숭아에 비해서는 날렵한 모습이라고 자신한다.)의 특징이 그러하듯 집안의 강아지가 나에게 성가시게 굴지 않는다면 구태여 다툼을 만들고 싶지 않고 강아지보다는 어스름에 소주 한잔을 더 좋아하는 터라 큰 관심도 없다. 더욱이 사서(四書, (3))를 읽고 노장(老莊)을 배우기를 즐겨하는 개인적인 성향을 더해 놓고 보면 내가 강아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경우다.


어쩌면 내 생각을 잘 요약한 것은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Bierce. 1842 ~ 사망연대 모름)인 것 같다. 그는 특유의 냉소적인 언어로 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개(Dog)

(명사) 세상에 차고 넘치는 신에 대한 경배의 마음을 흡수하기 위해서 고안된 신의 부속물.

이 성스러운 존재들 가운데 작고 부드러운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은 여성의 사랑을 받는다는 면에서,

어떤 남성도 원하지 않을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개는 고대의 유물로서, 시대착오적이다.

개는 힘써 일하지 않고, 실을 짓지도 않는다.

영광스러운 솔로몬 왕도, 잘 먹고 뒤룩뒤룩 살쪄서 하루 종일 태양 빛에 푹 젖어 현관 깔개 위에 엎드려 지내지는 않았다.

그러는 동안 개 주인은 그놈이 주인을 관대하게 알아봐 준다는 듯이 솔로몬 같은 꼬리를 한번 휘둘러주는 것을 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 이 친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문체를 구사하는지라 가급적 한 문장 한 문장 띠어 읽어야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있다. 따라서 문법을 무시하고 한 문장씩 배열했다(5).


그런데 개털이 죽고 나서 집안에 눈이 닿는 모든 곳에서 개털 이를 더듬는 나를 발견했다. 자다 가서 일어나 개털이 있음 직한 곳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틈만 나면 개털이 사진을 뒤적이게 되고 정리하는 이유가 뭔지 나 스스로도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지미 카터(Jimy Carter, James Earl Carter Jr. 1924~) 전 미국 대통령(6)이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장작 패듯이 노트북 자판을 일주일 동안 두드려대며 내가 생각하는 것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보았다. 그리곤 뭔가 핑계를 찾아 몇 달간 쳐다보지도 않았다.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내가 쓴 글을 다시 읽고 개털이 사진을 보다 보니 괜히 먹먹해지고 눈이 시큰해지기도 하는 게 도저히 오래 할 수 없었다. 이것이 나이가 들어 생체 호르몬이 변해 한말 또 하고 한말 또 하고 괜히 눈물이 늘어나는 주책화의 과정인지 지천명의 나이에 천하에 이루어 놓은 일이 없는, 난세에 홀로 그 선함을 닦는 군자의 내면의 슬픔의 발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그랬다. 몇 달이 지나 다시 이 글을 정리하는 하고자 결심한 것은, 그게 좋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두 치의 거리에서 본 개털이의 삶이 아마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어쩌면 그 누군가 중에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나’ 일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1) 논어 옹야(雍也) 편에 나오는 말이다.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면 지혜롭다 하겠다(敬鬼神而遠之, 可謂 知矣)’. 김학주 역주. 2009. 『논어』 서울대학교 출판 문화원. pp94-95.


(2) 빌 브라이슨(Bill Bryson), 홍은택 옮김. 2008. 『나를 부르는 숲』 동아일보사. pp.184.


(3)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이른다. 골치 아프고 복잡한 한자로 돼있고 아무리 봐도 밥이나 쌀이 나오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4) 노자와 장자를 이른다. 흔히 도덕경이니 무위자연이니 하는 그 책이다. 역시 밥과 쌀 하고는 아무 관계없고 아무리 읽어도 하늘을 날 수는 없다.


(5)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Bierce), 유소영 옮김. 2000.『악마의 사전』 정민 미디어. pp15.


(6) 39대 미국 대통령이다.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은 박정희였다. 둘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5.18 당시도 재임했다. 이 사람은 휴가 때면 대통령 별장에 가서 장작을 패곤 했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는 ‘삽질‘ 하는데 미국에서는 ‘도끼질‘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달밤에 체조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keyword
이전 01화범례(凡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