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건방진 형(傲慢哥)

by 누두교주

다섯 번째 사례는 '시 건방진 형(傲慢哥)'이다. 그는 금년 29세이며 충칭의 모 현 정부 소재지에서 왔으며 위로 출가한 누이가 둘 있는 막내아들이다.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라 어려서부터 우대를 받고 자랐으나 산만하고 건들거리는(吊儿郎当) 태도로 공부를 등한시하고 자주 싸움질을 해대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따라서 복잡한 필획의 글자는 알아보지 못하는 거의 문맹 수준의 지적능력을 갖고 있다.


그는 19세 때 고향의 친척을 따라 공사 현장의 조수로 외지 품팔이를 나서 무척 고단한 경험을 한 후 여기저기를 떠돌기 시작했다. 그 후에 우연히 신장(新疆)에서 날품을 팔아 적지 않은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가 얼마가 지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좋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려 불법 도박장을 개설해 운영하다 발각돼 6년의 징역형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출감 후에 그는 '전과자(有案底)'신분으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어 베이징에 나는 누이와 매부의 도움으로 의류와 과일 관련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경영성과는 좋지 못했고 누이와 매부의 신세를 지는 것이 미안해 남방의 선쩐으로 내려왔다. 선쩐에도 도와줄 친척이 있었지만 구속받고 싶지 않던 그는 스스로 원해서 '싼허'로 들어왔다. 전과자인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본인 스스로 구할 생각이 전혀 없고 날품팔이에 만족했다. 날품팔이는 전과자 신분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일당은 높았으며, 감옥 안의 중노동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일이 수월했다. '싼허'에서 생활한 지 반년 정도 후에는 '꽈삐' 상태와는 거리가 있는 비교적 여유 있는 상태가 되었다.


실사구시(实事求是)(1)에 입각해 말한다면 시 건방진 형은 똑똑하고 담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 '싼허'에 왔을 때부터 다른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天壤之别)였다. 무엇보다 '노력해 일하고 비교적 나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차이였다. 그는 띠아오마오들이 힘들어 기피하는 일도 매번 매우 성실하게(老老实实) 임해 항상 어물쩍(打混)하고 넘어가려는 띠아오마오들로부터 '바보(傻子)'라는 비웃음까지 샀다. 시 건방진 형의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는 쉽게 노동자 모집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오래지 않아 날품팔이 일감 전체를 청부받게 되어 시 건방진 형은 빠른 시간에 날품팔이 품팔이에서 중개업자(中介)가 되었다. 예를 들면 다섯사람이 일당 220위안에 7일간 해야 할 일을 청부받아 일하는 사람에게는 170위안만 주고 50위안은 자기가 챙겨 하루 250위안, 7일간 1,750위안의 수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는 육체노동을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감히 하지 못하는 '채권추심 대행(代人要账)'등을 통해 하루 300위안 이상의 별도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당연히 '꽈삐'와는 거리가 먼 '싼허'의 절대적인 부자가 되었고 일정기간 돈을 물 쓰듯이 쓰는(挥霍) 생활을 했다. 심지어 '거리의 여자(小妹, 类似于站街女)(2)'를 자주 찾기도 한다.


그가 띠아오마오 들로부터 반감을 유발해 시 건방진 형이 된 이유는 자신의 일당, 옷이나 먹는 것, 그리고 담배 등의 가격을 이야기하며 어때?(这么样?), 대단하지?(厉害吧?) 하는 것과 같이 스스로 잘난 체하는 말(自夸的话)을 많이 해서이다. 심지어 복권방에서는 100위안짜리 지폐를 내보이며 돈이 없는 띠아오마오들을 희롱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자만(炫耀)하는 생활도 오래가지 못하고 '꽈삐'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원인은 우연히 시작한 '복권'에 있었다. 그는 첫날 우연히 복권을 사게 되었고 그것이 맞지 않자 배팅을 계속해 먹는 것도 잊고(废寝忘食) 복권방이 문을 닫는 11시까지 탐닉했다. 그다음 날도 복권방 문 열기 전부터 기다려 끝내는 모든 저축한 돈을 다 잃을 때까지 지속했다. 끝내는 복권방에도 만족을 못하고 늦은 밤 도박판 까지 기웃거려 조금의 돈이라도 생기면 모두 노름판에서 날려 버리게 되어 빠른 속도로 '꽈삐'상태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고향의 어머니를 걱정 하지만 최근 2년간 어머니에게 돈을 보낸 적은 없다. 그는 곧 '싼허'를 떠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그럴 기색은 보이지 않고 아직도 복권방을 출입하고 있다. 누군가 그에게 미래의 목표와 계획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그는 항상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며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사회 구조와 층차의 연구 영역에서는 서로 다른 기준에 의해 사회의 여러 등급을 구분해 낼 수 있다. 하나의 같은 등급의 사회에 있어서도 더욱 세분화할 수도 있다. '싼허' 청년들은 비록 유사한 하나의 집단으로 보이지만 서로 다른 몇 개의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썬허 청년 내부에도 서로 다른 정도의 그룹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오랜 시간 일하지 않고, 복권방에 가서도 복권을 사지 못하고 매일 PC방이나 작은 여관의 단체방에 처박혀 있으면서 몇 날 며칠이고 샤워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는 다면 ''꽈삐' 새끼(挂逼仔(崽)'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무 때나 땅에 눕고, 며칠 동안 굶기도 하고, 누군가 희사(施舍)를 베풀면 이내 고주망태(烂酒如泥)가 되어 땅 위에 뒹굴고, 몇 달간 심지어 1년간 옷을 빨아 입지 않은 경우는 ''싼허'따선'으로 칭한다.


그들은 서로 멸시하고(看不起) 비웃지만(调侃) 근본적으로 논쟁을 하지는 않는다(据理力争). 다만 시 건방진 형의 경우 천성적 우월감(天然的优越感)을 가지고 항상 다른 띠아오마오들을 비웃고(讥讽)하고 멸시(蔑视)하였는데 복권과 도박에 빠져 끝내는 더 이상의 시 건방짐이 없는 띠아오마오로 녹아들어 갔다.


(1) 원 뜻은 '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추구한다'는 뜻으로 『汉书·河间献王传』이 출전이다. 실사구시는 마오쩌뚱이 "공산당은 사람을 위협해 생존하지 않고 막스 레닌주의의 진리, 실사구시, 그리고 과학에 의지해 생존한다"(“共产党不靠吓人吃饭, 而是靠马克思列宁主义的真理吃饭, 靠实事求是吃饭, 靠科学吃饭)고 언급해 공산당의 사상 노선과 사상 작풍의 중요 내용이 되었다. 시진핑도 2018년 2월 16일 중앙당교 언급에서 (실사구시는) 마오쩌뚱 동지가 중앙당교를 위해 써준 교훈으로, 여러분이 학습과 공작 중에 실사구시 이해에 주의가 필요하며.... (是毛泽东同志为中央党校题写的校训。大家在学习和工作中, 要注意深刻理解实事求是...)라고해 (이상 百度검색. 검색일. 2021.02.05) 당·국가의 일관된 사상 노선임을 알 수 있다. 저자의 이 말을 사용한 다음의 내용을 보면 '싼허' 띠아오마오의 모습과는 현격히 다른 현재 당·국가가 기대하는 인민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저자는 '꽈삐'녀(挂逼女)를 소개하면서 '거리의 여자, 정부의 엄격한 단속으로 인해 이미 없어졌다'(街头女,因为政府严格治理,已经没有了)고 별도 설명을 했다. (p.21 田丰, 林凯玄, 2020) 하지만 이 부분(같은 책 p.206)에 이르러서는 모순된 묘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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