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사례는 '피해 청년(受害青年)'이다. 그는 대략 26-7세이며 후베이 성 농촌에서 왔으며 선쩐에 온지는 3-4년, 그리고 '싼허'에 온지는 몇 달 되지 않았다. 그는 형과 누이가 있는 집안의 막내였는데 가정형편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학업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술학교에 진학해 1-2년을 다녔으나 특별한 기술은 배우지 못하고 외지 노동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간 곳은 저장 성이었는데 공장에 취직해 몇 년간 안정된 생활을 하려고 하였으나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수시로 근무지를 바꾸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좋은 않은 친구들(狐朋狗友)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농촌 본가에 돈을 보내지 않고 그달 벌어 그달 쓰는(月光族)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빈번한 직장의 이동과 낭비하고 저축하지 않는 그의 생활 태도는 농촌 본가의 지지를 감소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국 저장 성에서는 돈을 벌지 못하고 춘절을 쇄기 위해 고향에 돌아간 길에 고향의 친척을 따라 동관(东莞)의 조명 용구 공장에 일정기간 근무했다.
급여도 높은 편이었고, 돈도 고향 친척이 관리해줌에 따라 얼마간 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고향 친척과 다투는 일이 생겼다. 이미 무미건조(枯燥乏味)한 공장생활이 싫기도 했던 그는 대도시인 선쩐으로 갈 것을 결심했다. 그전에 알던 사람으로부터 '싼허'에 가면 수많은 직업소개업소(中介)가 있어 매우 쉽게 취직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바 있어 '싼허'로 왔다. 그는 '싼허'에서 일정기간 날품팔이 노동을 하고 약간을 돈을 벌었다. 만일 그에게 신분증을 네다바이(行骗) 당해 잃어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는 띠아오마오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피해 청년은 '싼허' 인력시장 로비에서 날품팔이를 모집하는 중개업자들이 제시하는 일의 유형, 시간 그리고 임금을 비교해 본 후 적합다고 여겨지는 일자리를 골라 응모했다. 응모하는 방식은 신분증을 맡기고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 모여 준비된 교통편으로 함께 일터로 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 중개업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피해 청년은 악덕중개업자(黑中介)에게 속은 것을 깨닫고 경찰에 신고해 당시의 CCTV를 검토해 보았다. 하지만 그가 신분증을 악덕중개업자에게 건네주는 장면이 촬영된 것은 없었다. 사실 그가 당한 수법은 '싼허'의 인터넷 게시판에도 여러 차례 알려진 모두가 아는 사실(众所周知)이었다. 결국 경찰이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그가 잃어버린 신분증이 악용돼 그의 명의로 개설된 유령회사가 18개나 검색되었고 그 회사들의 설립 등록자본 총액이 500만 위안이라는 사실이었다. 만일 이 회사들이 불법행위에 연루돼 문제가 될 경우 피해 청년은 법인 대표로서의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신분증이 없을 경우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우선 숙소를 얻을 수 으며, PC방 이용도 불가능하다. 물론 날품팔이에 참여해 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러 날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하이신대주점에서 잠을 자며(노숙을 하며) 겨우 하루 한 끼 먹기도 어려워 어떤 때는 연속 이틀간 굶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처지는 다른 띠아오마오들의 동정을 샀고 결국 다른 사람의 신분증(가짜 신분증)을 구해 주는 사람이 있어 다른 사람 명의로 날품팔이를 다시 찾아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신분증을 잃어버렸을 때 본적지인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발급받으면 될 일이지만 그는 두 가지 이유로 그것을 포기했다. 첫째는 돈도 벌지 못하고 신분증 잃어버려 집을 찾으면 고향의 이웃들이 그 부모를 비웃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테니 가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동관의 친척과 다투고 뛰쳐나온 일이 고향에 알려져 있을 테니 만약에 돌아간다면 다른 친척의 멸시와 조소를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그는 선쩐에서 신분증 재발급받는 방법을 알아보려 했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재발급을 위해 어떤 자료와 절차가 필요한지 문의할 상응하는 정부기구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 명의의 신분증으로 날품팔이를 찾는 것은 매우 수월해 며칠이 지나자 신분증을 재발급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었다(抛诸脑后). 남의 신분증으로 안정적인 날품팔이를 구해 '싼허' 유니클로에서 옷도 사 입고 허기도 면할 수 있었지만 노숙 생활은 계속되었고 하루 일하고 삼일 빈둥거리며 의욕 없는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피해 청년은 최근 복권방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복권이나 도박에 손대지 말고 잃어버린 신분증을 말소하고 새로운 신분증을 발급받아 안정된 직장을 찾아 가능한 한 빨리 '싼허'를 떠나야 한다는 합리적인 충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나태해 질대로 나태해지고 의욕과 희망을 상실한 피해 청년과 같은 경우는 그대로 '싼허'의 함정에 빠져들 수밖에 없고 그 마지막은 '꽈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