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오롯의 시간
아침 알람이 울리면 잠에서 깬다. 그로부터 2~30분 후면 아이들도 잠에서 깬다. 보통 한 7-8시 즈음이다. 그 시각부터 아이들이 잠드는 시간까지 나는 온갖 소리에 둘러쌓여 지낸다. 특히, 엄마특수와 더불어 직업특수로 나는 하루종일 아이들의 소리에 둘러쌓여 지낸다. 보통 오후 3시가 되면 한두시간 정도, 그날의 1차 고요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그 고요를 통해 약간의 충전을 마친 후, 다시 소리들 속으로 돌아간다. 보통 육아출근이라고들 한다.
밤 10시쯤 되면 2차 고요의 시간이 시작된다. (고요를 즐길지 미디어의 소리를 즐길지는 그날그날의 나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정말 온갖 소리에 하루의 진이 다 빠진 날은 방에 들어가 불도 다 끄고 그냥 침대에 누워 어둠과 고요를 즐기고 싶다. 정말 축 늘어져서 온 몸의 구멍을 고요로 막아버리고 싶은 날이다. 정말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은 날. 5~10분이면 충분하다. 잠깐의 어둠 속 고요를 만끽하고 나면 다른 것들이 느껴진다. 에너지 요정들이 나를 톡톡 건드리는 기분이다.
깜깜한 어둠에 색이 입혀진다.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가 퐁퐁 솟아난다. 저 멀리 소리가 들려온다. 먼곳에서부터 천천히 적막을 깨는 바람같은 소리가 날아온다. 무엇을 해야할 지 생각이 난다. 오늘 하루 고생한 나에게 청량함을 선물해볼까? 따루깍, 딸칵하는 소리. 노오란 액체거품 사이로 올라오는 뽀글뽀글한 기포. 거실 식탁에 앉아 맥주를 한 잔 할까? 아니야 참아야하니 노란색은 포기하고 투명한 탄산수를 한 잔 마셔볼까? 책을 읽어볼까? 아니야 그림이나 한 장 끼적여보자.
아, 오늘 참 진빠졌지만 오늘도 잘 살아냈다. 내일은 또 어떤 신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 불을 켜본다. 아, 일단 어질러진 거실부터 좀 정리해야겠구나.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곳에서 오롯이 집중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난 연휴 30cm 가량 두텁게 쌓인 눈밭 위로 냅다 누웠었다. 아주 폭신했다. 심지어 차갑지도 않았다. 주변에 우리 가족 말곤 사람도 거의 없었다. 자연 한 가운데 그냥 하얗게 눈바람만 가득했다.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깊은 산 속 폭신한 풀이불 위로 포근히 안기듯 누워 눈을 감아보면? 처음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곧 색색의 많은 것들이 퐁퐁 솟아나겠지? 내가 눕느라 짓이겨진 초록 풀내음 그리고 그 아래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은 갈색 흙내음. 틈만 나면 생명력을 자랑하고픈 땅 속 에너지들이 느껴질 것이고, 그리고 조금 후 산 속의 많은 소리들까지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멀리서 들리는 새 소리, 보이진 않지만 흘러가는 물줄기의 노랫소리, 바람에 춤추는 나뭇잎들이 살랑대는 소리도 함께 말이다.
눈을 감고 있어도 보일 것 같은 숲 속의 모습들, 혹시 내가 눈을 감고 있어 볼 수는 없겠지만 산의 요정들도 내 주변에 와 한 바퀴 돌고 가는 건 아닐까? 오롯이 그것들을 느끼고 나면 나는 또 벌떡 일어날 것이다. 일어나 또 나의 일상을 활기차게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나를 채우는 오롯한 나의 고요한 시간. 나의 고요의 시간을 기다려준 알록달록할 나의 내일을 반갑게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