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짜 타임머신을 타는 법

기록 그리고 그 기록과 마주하기

by 늘해랑



얼마 전 우연히 내가 블로그를 언제 개설했던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의 기록의 시작은 싸이월드였겠지만 페이스북도 거쳤지만 그래도 블로그 라는 것을 시작한 것은 네이버 플랫폼이었다. 지금의 아이디를 사용하기 전에 숫자 2개를 뺀 영어로만 이루어진 아이디로도 운영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더 됐을 것이다 생각은 했지만 주로 오래 애정을 가지고 운영했던 블로그는 언제부터였더라? 하며 첫 게시글을 썼을 법한 게시판에 들어가서 가장 마지막 페이지로 들어가보았다. 2014년,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이었다. 지금의 신랑과 (다행히) 어느 정도의 연애기간을 거치고 결혼을 생각하고 있던 시기였다. 각종 일상과 함께 웨딩준비를 하며 본격적으로 이웃과의 교류를 하며 웨딩준비 기록을 차곡차곡 쌓았더랬다. 그리고 그 이후 육아일상, 육아용품, 가족여행, 맛집 정보들 그리고 가장 뿌듯한(?) 아이들과의 엄마표 놀이들과 체험들. 아쉽게도 교육자로서의 기록은 별로 없다. 그건 자신이 없네.


아무튼 그렇게 미혼시절 썼던 블로그 운영 초기의 글들을 내려보다 재미난 글을 하나 발견했다.



https://m.blog.naver.com/uhoosldb88/70188854409



그 당시 블로그씨가 했던 질문, '나에게 타임머신을 탈 수 있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면?' 이었다.

최근에 비슷한 류의 글을 쓴 적이 있어서, 과연 그 시절의 나는 어떤 타임머신 계획을 세웠을까 궁금해져서 읽어보았다. 11년 전의 나는 타임머신이라는 단어에 아묻따 '미래'만을 떠올린 듯 하다. 과거로는 갈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아무튼 그 때의 내가 가고 싶었던 세 군데의 미래는 이러했다.


1. 나의 결혼식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그 당시의 미래이다. 예상한 대로 나는 그 당시 옆에 있던 남자와 그 해 겨울 결혼식을 올렸다.



2. 나의 아가(들이 되어버렸네.)

나와 내 신랑의 어떤 부분을 쏙 빼닮은 아기, 긍정적인 아이로 항상 웃으면서 자라나는 축복받는 아가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그 아이가 보고싶다고 썼더랬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만나 지금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3. 나의 마지막 순간

내 인생의 마지막, 그 모습이 어떨까 궁금해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고 후회 없이 눈을 감는 사람이 얼마나될지, 그 소수에 내가 들어간다면 얼마나 좋을지 를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나도 아직 알 수 없는 마지막 여행이다.





내가 이를 재미있게 읽었던 것이 얼마 전 내가 쓴 글 중 하나와 관련 있다고 했었다.


72시간의 선물


바로 이 글이다. 이건 생의 마지막 순간의 나를 상상하며 쓴 글인데, 역시 타임머신과 관련된 글이다. 사망선고를 받은 그 순간, 누군가 나에게 72시간이라는 시간을 선물한다.(선물...이 맞겠지?) 가고 싶은 순간을 다녀오라고 말이다. 과연 어느 시기로 갈 것인가.


1. 학창시절,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돌아온다고 했다.

2. 죽기 1년 전,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다고 했다. 종'지현'식이라고.

3. 죽기 하루 전, 조용히 나와의 시간을 가지며 맛있는 마지막 한끼를 먹고 잠을 자겠다고 했다.


같은 세 번의 타임머신을 글감으로 떠올리곤 한 번은 미래를 보고 한 번은 과거를 상상한다. 11년 전의 나도 참 나구나 싶고, 지금의 나도 참 나구나 싶다. 11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걸 보니, 그리고 11년 전의 내가 꿈꾸던 내가 지금의 내 모습과 크게 다름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여전히 기록을 하고 있다는 것도 참 다행이다. 기록을 했기에 11년 전의 나도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오늘 재미난 과거여행을 하면서 또 기록의 중요성, 기록의 재미를 느껴보았다. 진짜 타임머신을 타는 법, 기록 그리고 그 기록과 마주하기.





지금의 내 모습. 아직 미래로의 여행은 상상으로 끝나지만 미래에서 과거로의 타임머신을 타기 위해 오늘도 한글자 한글자 나를 남겨본다. 조금은 지저분한 곳은 안 본 눈으로 렌즈에서 치워버리고 예쁜 모습만 딱 구도 잡아 찍은 사진. (훗날 이 기록을 보면 나의 여유를 부러워하겠지? 지워진 것들은 기억 못하고 말이다.ㅋㅋ)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보내고 라떼 한잔 내려 쪽파크림치즈베이글과 함께 뇸뇸하며 음악을 틀어두고 노트북을 켠다. 글을 다 쓰면 옆에 쌓은 책들을 읽어야지. 그래도 아직 오전이라니. 아 행복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요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