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춘.기 사용법

인생에서 딱 한 번 휘두를 수 있는 무기, 사춘기.

by 늘해랑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 나의 겨울방학 이야기>라는 책은 나의 2024년 마지막 책이다. 마음에 든 구절이 있어 찍어두고 기록하며 생각 정리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곤 이제야 기록해본다. 그 구절의 시작은 '사춘기'였다.


'사춘기' 하면 어떤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지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 온 '사춘기'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신체적으로 성호르몬의 분비로 2차성징이 나타나며 정신적으로는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 고민과 변화를 겪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사용한다는 정의를 바탕으로 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뜻했다. 거친 바람과 화난 파도의 시기와 보통 연결되어 사용하는 무서운 청소년기를 상징하는 단어.


그런데,


p.167-168.

'사춘기'를 말할 때 예민하고 반항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리다 보니 대부분 부정적인 단어나 의미로 쓰이는 듯했다. 그러나 나에게 사춘기는 기쁨으로 충만한 예쁜 단어였다. 덕질을 하면서 작고 사소한 것에 단순하게 기뻐한 내 모습이 사춘기에 머물러 있었다. 가장 뜨겁고 즐겁고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이 나의 사춘기였다. 또 사춘기는 누구한테나 공평하다는 점도 좋았다. 누구에게나 지나가는 시절이란 어쩌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마음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사춘기를 조금 더 소중하게 여겨 주길 바랐다. 무언가를 아주 깊이 좋아하는다는 것, 후회 없이 사랑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만하게 채워지던 하루하루의 기억들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사춘기'는 나에게 생각이 미숙한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의 치기어린 반항심을 밑바탕에 둔, 거친 바람과 화난 파도에 휩싸여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그런 시기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지나왔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기쁨으로 충만한 예쁜 단어라니. 머리를 한 대 띵 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설득당해버렸다. 사춘기라는 시기보다 약 20년 더 살아온 나도 아직 제대로 된 판단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없는데, 왜 그들을 그렇게 생각해버렸을까. 정말 오히려 기쁨으로 충만한, 생각이 열린, 채울 것으로 가득한 그런 시기가 아닐까.


'사춘기'라는 단어를 제대로 뜯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또 찾아보았더니 思春期(생각할 사, 봄 춘, 시기 기), 봄을 생각하는 시기 였다. 뭐야, 정말 이렇게 예쁜 단어였어? 봄은 새싹이 싹틔우는 시작의 계절이다. 아이들이 인생에서 자신의 싹을 틔우는 시작을 준비하는 시기가 바로 사춘기였다. 사춘기라는 단어를 나부터 다르게 여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은 날 저녁, 집에 놀러온 동생네 부부와 대화를 하다 정말 의도치 않게 '자녀교육' 이야기가 나오며 '사춘기' 얘기가 나왔다. 절대 내가 꺼낸 것이 아닌데 신기하게도 말이다. (동생과 나는 사춘기에 부모님과 크으게 갈등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듯 하다.) 동생이 먼저 말을 꺼냈다. "사춘기 시기에 애들한테 '엄마아빠는 사춘기에 크게 갈등이 없었다. 아마 너도 그럴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은근슬쩍 여러번 해주면 애들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더라. 일종의 가스라이팅 같은 거? 뭐 그렇다대. 근데 그게 맞는 것 같다. 오히려 사춘기에 반항하고 어둡고 이런걸 당연시 하고 '니 와그라노? 요새 뭐 하는기고?' 그라면서 그 시기에 괜히 집중해서 트집 잡아 같이 싸우고 이러면 그 때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더 한다고."


동생의 이야기를 듣는데 낮에 읽은 책이 당연히 또 떠올랐고, 딱히 책의 내용을 나누진 않았지만 동생의 말에 동의한다는 투로 '사춘기는 잘 지나간다면 그리 어둡고 반항적인 시기가 아니다.'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사춘기라는 단어를 아이들이 다시 새겼으면 좋겠다. 사춘기는 정말 빛나는 단어이다.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시기이다. 아이들이 이를 어둠의 아우라를 풍기는 무기가 아닌 밝음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 휘두르는 무기로 사용했으면 좋겠다.


졸업을 앞둔 아이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사춘기를 향해 가고 있는 아이들아, 너희가 곧 휘두르게 될 그 시기에만 휘두를 수 있는 그 무적의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지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잘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반짝 반짝 빛날, 인생의 싹을 틔울 새로운 너희의 봄을 응원할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월1일의1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