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잔은 원래 쓴 법이다
지난 1월, 무모한 도전의 첫 발걸음으로 당당하게 공모전에 동화를 출품했다. 3월 중 당선작이 발표된다고 했고, 기대하지 않는 척 무심히 기다렸다. 하지만 속으로 5퍼센트 정도는 어이없게도 기대를 하고 있었다. 심사가 길어지는지 며칠 더 밀린다는 공지가 떴고 그렇게 어제 발표가 났다.
당연하게도 내 이름과 내 작품은 없었다.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게 했다던 아쉬운 출품작에도 내 이름과 내 작품은 없었다. 알지 알지. 제출하고 나서는 그 원고를 다시 보지 않았다. 고칠 거리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단은 내버려두었다. 발표 나기 전까지이라는 핑계를 대며. 그리고 고배를 마셨다. 이제 정신을 차려야지. 그런데 뭘? 어디가 어떻게 부족한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이 그냥 똑 떨어진 거라 이걸 어떻게 다시 들여다보아야 하나 싶었다. 부족한 건 알지만 일단은 나의 창작물, 내 새끼(?)인지라 쉬이 빨간펜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볼까 하고 챗gpt 유료버전을 쓰고 있는 지인에게 살짝 계정공유를 부탁드렸다. 무료버전은 첨부파일 분석까지는 무리인 듯 싶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흔쾌히 계정을 공유해주었고 나는 공모전에 출품했던 파일 그대로 챗gpt에게 던져주었다. 심사위원의 눈으로 바라봐달라고 심사평을 부탁했다. 좋은 점, 부족한 점, 개선점을 매의 눈으로 분석해달라고 말이다.
유료버전 챗gpt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과감하게 나의 원고를 삭제, 삭제, 삭제 하기 시작했다. 초반 도입부가 너무 길어 지루하다는 의견에 몇 개의 문단을 통으로 날려버렸다. 또 전개 중 이어지는 두개의 에피소드가 감정선 흐름이 비슷하다며 중복된다는 의견을 주었다. 그래서 하나의 에피소드를 또 통으로 날려버렸다. 원고의 분량이 2/3로 줄었다.
전개에도 설정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아이디어를 열심히 주고 받으며 새로운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어갔다. 수상작 발표를 기다리는 두 달동안 쿨쿨 잠들어있던 원고를 두들겨 깨웠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술자리에서 첫잔을 마시고 농담삼아 이런 말을 한다. "어 오늘 첫 잔이 달아, 위험한데?", "아, 오늘 술이 왜 이렇게 쓴거야, 오늘 술 잘 들어가겠는데?" 첫 술잔이 달콤했던 날은 방심한 채 마시다 결국 쓴 맛을 보게 된다. 위험한 첫 잔이다. 반대로 첫 술잔이 쓴 날은 조금 더 조심하게 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먹는다. 그렇게 마시다보면 쓴 맛은 점점 잊혀지고 그날의 술자리를 즐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날은 깔끔하게 끝이 난다.
나의 첫 잔은 쓰디 쓴 잔이었다. 고배. 쓴 맛이 혀끝을 스친 그 "고배"를 시원하게 원샷했다. 그리고 머리 위로 빈잔을 탈탈 털었다. 털어낸 술잔에 새로운 술을 꼴꼴꼴 채워넣는다. 두번째 잔도 아마 쓸테지. 세번째, 네번째 잔도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믿는다. 언젠가 채워질 어떤 술잔은 분명 달콤한 축배의 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