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러닝메이트를 꿈꾸다
띠띠띠띠- 띠띠띠띠-
'몇 시야, 대체.'
아직 깜깜한 방을 더듬어 휴대폰 화면을 켰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평소라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이 시간에 왜 알람이 울고 있는 건지. C씨는 잠결에 툭 거친 말을 내뱉었다 떠올렸다. 알람을 맞춘 것이 본인이었음을.
"새벽 달리기 하고 있어. 꽤 됐어. 달리다보면 하루가 시작되는 게 그렇게 뿌듯하고 힘이 날 수가 없다니까. 하루의 시작에 이 힘든 걸 해낸 나는 오늘 어떤 일이 있어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새벽 러닝을 꾸준히 하고 있는 직장동료가 요즘 주변인들에게 새벽러닝 예찬을 하며 크루들을 모집 중이었다. 야행성(夜行性)인간인 C씨는 신행성(晨行性)인간들과는 철저히 다른 류이기 때문에 그 제안에 단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이런 C씨가 살짝 흔들렸다. 한 장의 사진. 입사동기 c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때문이었다. 동이 트는 새벽녘 한강다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짙은 네이비색 스포츠 레깅스가 다리선을 따라 매끄럽게 밀착되어 있었고, 상의는 민소매 드라이핏 탱크탑. 연한 라벤더 색이 사진너머로 기분좋은 향을 풍겼다. 높게 묶은 포니테일. 그녀의 경쾌한 웃음과 함께 사진에 에너지가 느껴졌다. 해시태그 #새벽달리기 #사내러닝크루 #건강챙겨주는회사 #출근보다먼저뛰는중 #같이뛰면덜힘들어요 #오늘도잘달렸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진지하면서도 즐거워 보였다. 달리기를 억지로 '해야 할 일'이 아닌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일'로 여기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표정이었다. 달리기를 마친 얼굴이라 붉은 기운 한 가득이었지만 떠오르는 태양보다 더 빛나 보였다.
그래서였다. 어제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알람을 맞춘 이유. 한 때는 나도 러닝을 했었으니까. 일어나기만 한다면 갈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첫 날이니까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어제 단톡방에 공언도 했는걸. 얼른 일어나 꾸민 듯 안 꾸민 운동복을 챙겨 입고 운동화를 신고 손목에 스마트 워치를 찼다.
"여기야, 여기! 진짜 왔네!"
시작점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다른 사람은 뭐, 블러처리가 되었다.
"용케 일어났다, 못 일어날 줄 알았는데."
"날 뭘로 보고, 나도 이제 건강 챙길 나이지. 도와줘라."
"그래, 오늘은 첫날이니까 적당히 해. 내일 또 나와야지."
"네, 선배님. 먼저 달리시죠?"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힘들 줄 알았는데 숨이 차오르지 않는다. 땀도 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녀와 보폭을 맞추고 달리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달리는 사람들 사이로 바람이 스쳐지나간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앞서 나가지도, 뒤쳐지지도 않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맞추고 있었고 오래 함께 뛰어온 사람처럼 익숙했다. 조금... 황홀했다.
"처음 맞아? 잘 달리던데?"
"그러게. 나 아직 죽지 않았네."
"암튼 수고했어. 집에 가서 다시 자지 말고."
"어, 나도 얼른 가서 씻어야지. 러닝은 재밌었는데, 출근은 싫구나."
"그러게, 이따 회사에서 봐."
생수라도 한 잔 하고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씻고 가려면 출근시간이 빠듯했다. 뛰다보면 언젠간 시간이 나겠지. 뿌듯한 마음, 설레는 마음을 품은 채 그녀와의 러닝미래를 꿈꾸는 C씨였다. 꿈같은 미래에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들뜬 마음. 얼른 가라앉히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씻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침대에 누가 누워있었다. C씨는 깜짝 놀라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을 들여다보았다. 그건 C씨였다.
띠띠띠띠- 띠띠띠띠-
순간 귓가를 때리는 알람소리. 분명 눈을 뜨고 있었는데 눈을 떴다. 분명 서 있었는데 벌떡 일어났다. 분명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 그냥 꿈인가. 분명 달리고 왔는데 달릴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카톡- 카톡이 울렸다. 그녀였다.
"온다더니 안 왔네? 잠에 지셨군요. 내일은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