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공개 Aug 14. 2021

블라인드

조금 많이 무서운 메모

그녀는 마룻바닥에 시체처럼 널부러졌다. 두 손바닥은 하늘을 향한 채 시야는 허공에서 헤매였다. 불룩 튀어나온 배는 살아있긴 하다고 증명하듯 호흡주기에 맞추어 들쑴에 들쑥 날쑴에 날쑥였다. 비뚤어져버린 그녀의 체형처럼 그 마음도 이미 비틀린지 오래다.


죽은 듯이 생각만을 했다. 밤이 되면 그녀는 작은 원룸에 비스듬히 자라난 한 줄기 식물인간이 되어 생존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속에서 자라난 생각들은 작은 원룸을 거뜬히 메워버리고도 남았다. 그녀의 생각은 계속, 계속. 무한을 그리며 반복되었다.


죽음, 우울, 비하, 자괴, 집착, 공허, 좌절, 실패, 불신, 낙심, 자살


끊임없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피어났다. 잘못 찌른 주삿바늘에 그녀의 팔뚝을 휘감았던 푸르스름한 정맥 줄기에선 왈칵 피를 왈칵 토해냈다. 검붉은 생각들은 그녀의 팔목을 타고 흘러 넘쳐만 갔다.


그녀는 참 밝고 착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명성을 떨쳤다.고 스스로 생각을 한 건 아닌가 스스로를 늘 의심했다. 혼란스러웠다. 이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구별해낼 수가 없었다. 블라인드라는 익명 앱은 그녀를 장님으로 만들었다.


'수다 좀 그만 떨어라'

'에이스라고 착각하네'

'키보드 소리 시끄러워'


모든 게시글은 그녀를 향해 있었다.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도 수다를 떨었던 적은 있었고, 에이스라고 생각했던 적은 있었고, 키보드 소리가 시끄러운 편이였으므로. 그녀는 발신자도 수신자도 없는 익명의 폭언들을 쓸어 담으며 이것이 내 것이오 저것도 내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우걱우걱 삼켰다. 숨이 메이고 목이 막혀도 끄억끄억 울면서 이가 부서지도록 씹어댔다. 한글자 한글자 그 이상의 것들을 그녀는 작은 몸으로 소화해내려고 했다. 아무도 그녀가 그러고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하리라.


그녀는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 자신 조차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 널 암살했어야 했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