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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Oct 13. 2021

일하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읽지 마세요, 민망하니까.

일하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폐경기도 아니고, 임신한 것도 아니고, 의심되는 호르몬의 변화 양상도 없었다. 어떠한 고함소리도 없었고, 비아냥대는 읊조림도 없었다. 주변은 고요했고, 적막한 사무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눈물이, 눈물이 울컥하니, 시큰한 콧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주책맞게.


그냥 모니터를 바라보며 자판을 두들기고 있던 중이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충분히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쓸데없이 큰 눈망울이 짜증 나는 순간이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너무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이렇게 자욱하게 슬퍼질 수가.


"혼자서 끙끙대지 말구, 잘 모르겠으면 얘기해요."


맙소사, 이 말을 들은 지 12시간이 지났는데도 눈물 버튼이 유효하다니. 아무나 흘릴 수 있는 저 말에 아무도 흘리지 않을 눈물을, 나이 처먹고 혼자 감동해서 질질 짜는 꼬락서니가... 아니, 어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어리고 불쌍한 내 상태가 볼 때마다 한심스럽다.


나는 왜 아직도,

나는 왜 아직도,

나는 왜 아직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몸통도 머리통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저 감사한 감사해야 할 한마디에 씩씩하고 싹싹하고 밝고 착했다는 그 존재는,

슬퍼하고 우울하고 자괴하는 개체로 뭉개져버렸다.

사실 별거 아닌 대충 비슷한 삶인데 엄청나게 무너진 삶으로 포장해내는 병신.


그렇게 끝없는 우물 속으로 오그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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