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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Feb 13. 2021

그래서, 어느 손이 위야?

에라 모르겠다.

"절 해라"


차례를 지낼 때, 제사를 지낼 때, 경조사에 갈 때. 어디서든 절을 할 때마다 짧은 찰나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왼손이었나, 오른손이었나... 여자는 오른손이 위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제사 지내는 거니까 조상님들이 바라봤을 때 거꾸로 하랬으니, 오른손이 아래로 가야 하는 건가? 왼손이 위지? 남자가 왼손이 위가 아닌가...? 왼손을 위로 해도 되나? 틀리면 어떡하지? 누가 보면 헷갈린 사람처럼 보일 거 아냐? 아우 지금 찾아볼 수도 없고... 다들 내 손만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느 손이 위인지 애매하게 손톱만 살짝 겹쳐야겠다...'


애매하게 배치한 내 손이 부끄러워 눈썹까지 손을 드높이지 못하고 허리춤에서 얼렁뚱땅 절을 해버린다. 그러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진짜 치졸하다. 손 위치가 그렇게 중요한가? 왼손이 위건 오른손이 위건 대충 편한 쪽으로 포개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공손하면 되는 거잖아. 손 위치까지 조상님 고려해서 반대로 해야 하나?'


* * *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성체 성가(노래)가 시작되었고 신도들이 하나 둘 줄을 지어 신부님 앞으로 따라나갔다. 가톨릭 미사에서는 미사 중간에 성체('예수님의 몸'이라는 뜻. 축성된 빵)를 입에 넣어(먹어) 모신다. 성체를 모시기 위해 하나 둘 줄을 서면 2-3번째 전에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자신의 차례가 되면 양 손을 '주세요-'하듯이 모아야 한다. 그럼 신부님 또는 수녀님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하시고, '아멘'이라고 말하며 성체를 받으면 된다. 성체(빵)를 받으면, 아래쪽에 있는 손으로 성체(빵)를 집고, 반대쪽 손으로 입을 가리며 모시면 된다.

나는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성체를 집으려면 오른손이 밑으로 갔어야 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왼손과 오른손이 늘 헷갈렸다. 내 앞의 줄이 짧아질수록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왼손? 오른손? 어느 손이 위지? 고뇌하다 보니 어느새 수녀님이 코앞에 계셨었다.

"그리스도의 몸"

"아.. 아멘"

아멘을 하고 내 손을 봤더니 오른손이 위로 가있었다. 오른손이 위면 성체를 왼손으로 집어야 할 텐데?! 큰일 났다 싶어 재빨리 손의 위치를 바꿨다.

"학생"

난생처음으로 수녀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뒤로 가서 다시 받으세요."

"네?"

"뒤로 가세요"

"... 네..."

얼떨떨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인생 최대의 쪽팔림이었다. 수치심이었고 모멸감이었고 자괴감이 들었다.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내가 왜 그걸 헷갈렸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왼손이 위였어야 했는데.

그러면서도 억울했다. 손바닥 위치를 바꾸는 게 어때서? 손이 중요해? 예수님이 손 지고 뭐라 할 건가? 불필요한 허례허식으로 이렇게 공개적으로 수십 명 앞에서 혼을 냈어야 했나?

그 날은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며 침울한 마음으로 지새웠다. 그렇게 며칠을 속상해했을까, 성당을 가는 날이 다가오자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성당 안 갈래"

* * *


"-그래서 성당을 안 간다고 그런 거야."

"아 그런 일이 있었어? 몰랐네..."

"응. 고등학생인가 중학생때였나?"

"그 수녀님이 좀 별로다. 모든 수녀님이 그런 건 아니겠지."

"응 그렇겠지. 어쩌면 그 수녀님조차도 본인이 한 말이 나한테 얼마나 큰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시겠지."


어찌 됐건 나는 더 이상 성당에서 성체를 모시지 않았다. 모실 수가 없었다. '왼손 오른손 그 쉬운 게 아직도 헷갈리냐?'는 말을 스스로 만들어내곤 혼자 힘들어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불필요한 허례허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손이 위일까?

아니, 마음이 중요한 건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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