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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Feb 19. 2021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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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차갑고 시원해서 산책을 나갔다. 집 앞에 흐르는 작은 하천에는 오리 가족들이 살고 있다. 오명가명 세아린 결과 20여 마리의 개체들이 2~3 무리로 나누어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오리 녀석들을 볼 때마다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1

동글동글한 작은 생명체들은 반쯤은 자고 반쯤은 깨어있었다.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몸을 빼쭉 기울여 오리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발을 더 내딛지도, 뻗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지켜만 보았다. 반쯤은 후다닥 도망가고 반쯤은 가만있었다. 잠든 녀석들과 잠들지 않은 녀석들을 쉬이 구분할 수 있었다.


#2

도망간 녀석들은 왜 도망갔을까. 내가 무서웠던 걸까? 내가 왜 무서웠던 걸까. 오리들은 나 같은 무언가 크고 거대한 존재에게 무슨 일을 당했던 걸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라는 것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던 걸까. 저 잠든 녀석들은 어쩌면 사람이라는 것들에게 희생당했을지도 모르는 가여운 운명이 될 뻔했던 걸까.


#3

가여운 오리들. 내가 따라 걷는 작은 하천이라는 생태계에서 새끼 오리가 있다는 건 죽은 오리도 있다는 건데, 지금껏 죽은 오리들은 본 적이 없다. 왜 본 적이 없을까.

 - 시체가 물을 따라 둥둥 떠내려가서 그런 걸까?

 - 공원녹지과 주무관님들이 민원업무를 통해 해결하는 것일까?

 - 사람들의 눈을 피해 우거진 수풀 사이에 숨죽여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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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집에 들어가야겠다.

오리들아 다음에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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