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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Apr 05. 2021

집사 누나야, 안녕.

참치 이야기

저쪽 즈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집사 누나가 일어난 거 같다. 으, 집사 누나 얼굴 보러 가고 싶은데 영 일어날 힘이 없다. 어, 집사 누나 온다. 헤헤.


"참치야~ 잘 잤어?? 아휴 이뻐라."


집사 누나가 쓰다듬어 주니까 좀 살 거 같다.


"에고, 또 밥을 토했네, 어쩜 좋아..."


* * *


"구내염이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라,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어요"


어느새 묵직해진 참치를 소복이 안아 올렸다. 너무나도 순한 녀석이라 그만큼 더 마음이 아팠던 녀석이었다. 그저 무력하게 안겨 있는 참치를 쓰다듬었다.


"염증이 심각해서, 밥을 먹는 것도 토하는 것도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녀가 참치를 처음 만난 건, 밤길처럼 시꺼먼 아스팔트 위에서였다. 검댕으로 부벼진 참치는 멸치처럼 뼈만 앙상하게 메말라있었다. 몸도, 마음도, 메말라있었을 것이다.

처음 만난 참치의 눈 속에는 지독한 굶주림과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속에 숨겨진 에메랄드빛 눈망울을 알아보았다. 볼수록 이끌리고 빠져드는 오묘한 에메랄드빛 말이다.

그녀는 참치를 많이 먹으라는 마음으로 참치를 참치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곤 참치가 그녀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말이다. 이윽고 참치는 그녀에게 마음을 내려두었다. 참치에게 그녀는, 믿고 포근히 쓰러져 발라당 안길 수 있는 그런 누나가 되었다.


* * *


누나가 까만 상자를 들었다. 밖에 나가는 거 같다. 으, 배웅해주러 가야겠다.

누나는 저거로 무얼 하는 걸까. 츄츄가 있으려나. 츄츄 먹고 싶다. 으, 배가 너무 고파, 아파. 못 걷겠어.

"참치야~ 누나 나갈 건데~"

누나가 왔다. 쓰다듬어준다. 나는 참 누나가 쓰다듬어 주는 게 너무 좋다. 묵직하면서도 지긋이 내려앉는 게, 녹아내려 가라앉을 거 같다.

머리에서 등덜미까지, 머리에서 등덜미까지. 투윽, 투윽, 으. 스윽, 스윽. 너무 포근하다. 으, 힘 빠진다. 눈이 감긴다. 고마워 누나. 지금 이대로, 옆에 있으니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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