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52일 차] 지금 당신의 가족은 안녕한가요

조립식가족 정주행 후에 남겨보는 '가족이란'

by NUL BOM

아무래도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어서일까. 하루의 루틴을 정해놓고 도장깨기마냥 100% 달성을 목표로 열심히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다 보면 하루가 심심치 않게 흘러가지만,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일탈을 하는 날들이 종종 생긴다. 일탈이라고 해봤자 유튜브를 켜고 흘러가는 알고리즘대로 쇼츠를 보며 시간을 보내거나 넷플릭스를 켜고 아직 도전하지 않은 프로그램이나 이전에 봤지만 다시금 완주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첫 화부터 마지막화까지 끊지 않고 달리는, 뭐 그런 다소 오타쿠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다 보면 적게는 2-3시간부터 많게는 꼬박 하루가 다 흘러가 있기도 한데, 이번에 다시금 찾아보고 완주한 '조립식 가족'의 경우 흔히 있는 일탈의 끝에서 찾아오는 허무함이나 후회가 거의 없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첫 완주를 했을 때도 크게 허무하거나 후회하진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만큼 마음이 따뜻해지는 힐링이 있었던 드라마였다.

이가인지명이라는 중국 드라마가 원작인 조립식가족은 엄마 없이 자란 세 아이의 이야기이이다. 이들에게는 아빠만 둘이고 한 아이의 경우 혈연관계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조합의 가족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 아이들에게 피 한 방울 안 섞였으면서 가족 흉내를 낸다며 기구한 운명이라고 걱정하지만 이러한 말들을 정작 본인은 신경 쓰지 않고 다른 가족들에게 상처가 될까 봐 오히려 이를 신경 쓴다. 이들의 아침과 저녁은 아빠 중 음식점을 하는 아빠가 차려놓은 식사로 시작해서 끝이 난다. 매일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며 가족의 정을 쌓아간다. 이들을 보다 보면 우리 현대의 가족, 한 집에 살지만 정작 얼굴을 보며 밥 한 끼 하기 힘든 가족보다 훨씬 두터운 정을 자랑하는 진정한 가족 아닌가란 생각이 절로 든다.


가족의 형태, 구성 등이 다양해지고 있는 반면 요 근래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없었던 것 같은데 조립식가족은 그 제목이나 핵심 내용부터가 시대의 변화에 따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그리고 흔히 이래저래 복잡한 가족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선 스토리 상 주인공에게 위협이 되는 혈육이 갑자기 등장하기 마련인데 혈육이 등장하되 이들 가족들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혈육 이상으로 단단하고 두터운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물론 혈육이 아니기에 가족에서 연인이 되는, 충분히 있을 법한 그런 일들이 벌어지긴 하지만 이 또한 어느 순간 응원을 하게 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혈육이 가족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곤 한다. 홀로 자식을 키우는 것이 버거워서 동생에게 아들을 맡기고 연락을 끊은 엄마, 자식의 죽음을 그 자식의 형인 다른 자식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려 하며 평생을 이를 탓하고 비난하고 죄책감을 물으면서 그 힘으로 살아가는 엄마, 돈이 많은데 물려줄 사람이 없어 뒤늦게나마 친자를 찾아 나타난 아빠. 현실에선 이보다 더한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정신과 안정병동에서 일을 할 때 다양한 발병 요인이 있지만, 딱 이것 때문에 발병한 것이다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가족 간의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병이 시작되는 경우가 참 많았다. 그리고 가족들 중 가장 약한 자가 입원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더 치료가 시급한 다른 가족이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 환자는 이런 가족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 있는 것에 다행으로 여기며 그렇게 도망치듯 입원을 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마음을 울리는 대사, 장면이 참 많았다. 마음이 울릴 때마다 어차피 혼자이겠다, 참지 않고 눈물을 터뜨린 것 같다. 드라마 정주행이 끝난 다음에는 머리가 살짝 아픈 것 같을 정도였으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조립식 가족에서는 서로를 진심으로 안쓰러워하고 아낌없이 사랑한다. 진짜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불안과 함께 고비가 찾아오지만 이 또한 서로를 아끼기 때문이다.


그중에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어 그 장면설명과 대사를 가져와보았다.


해준이 이모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해준을 키워준 주원 아빠가 고맙고 미안하다. 그래서 해준이에게는 늘 잘해야 한다고, 나중에 몇 배로 갚으라고 항상 말한다. 이를 듣고 이게 또 아이에게 마음의 집이 될 거란 걸 아는 주원 아빠는 술을 마구 들이켜고 술 취한 김에 마음에 담아둔 말들을 쏟아붓는다.


잘하긴 뭘 잘해, 잘할 필요 없어... 세상에 키운 값 갚으라는 부모가 어디 있어...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뭐 다 행복이지, 얘네 행복이야? 나 좋자고 하는 일에 왜 하준이가 눈치를 봐야 해? 감사? 난 애들 때문에 길바닥에 침도 못 뱉고 살아... 행여나 애들한테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내가 그런 것도 다 후회될까 봐... 애들 덕분에 내가 제대로 사는데 내가 감사해야지! 애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하준이 쟤? 내가 뭘 하든 틈만 나면 나 도와주려고 애쓰는 애야... 자기 할 일 다 하면서 운동하고 지 청소 빨래 다하는 앤 데 저렇게 착한 애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놈의 잘해라 잘해라, 뭘 더 어떻게 잘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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