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54일차] 대한민국에서 임상간호사로 일한다는건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고 아파지는 임상간호사의 실체

by NUL BOM

앞서 글에서 소개한 바가 있지만 나는 10년 7개월 동안 대한민국의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했다. 남편의 근무지 이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운전면허도 없이 대중교통으로만 왕복 3시간이 훨씬 넘는 3교대 출퇴근은 절대 불가한지라(상근 근무도 쉽지 않았을 터라) 퇴사를 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주변 분들이 하나같이 붙잡아주시면서 이게 최선이냐고 그만두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지 않겠냐고 아쉬워해주셨는데, 어쩌면 나는 차라리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지금 이 시점에서 임상을 탈출하게 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평소에도 알고 있던 대로, 백수 생활을 해 보니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나는 살림을 별로 즐겨하지 않고 뭔가 나의 능력으로 하여금 돈을 벌고 성과를 내어 인정을 받는 일에 기쁨과 만족을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임상에서의 내 미래를 생각했을 때 앞으로의 길이 엄두가 잘 안 날 정도로 막막했고 암담했다. 그래서 잠깐씩 스쳐가는 아쉬움은 들 지언정 내 선택에 대해 큰 후회는 남지 않는다.

나도 결혼을 한 입장에서 10년 차가 넘어가면서 주변에서 출산, 육아를 하면서 일을 지속해야 하는 선배나 동료 간호사들의 애로사항이 앞으로 닥칠 나의 일처럼 크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신규 때부터 보아온 몇몇 짠하고 안타까운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이가 들어서도 3교대 근무를 계속해야 하기에 밤이 되면 졸음을 견뎌내면서 꾸역꾸역 본인의 일을 하시던 선생님들, 밤을 지새우는 것 자체가 고되기 때문에 빠릿빠릿하게 일을 하는 것도 버거워 1시간의 추가 수당 없는 추가 근무는 늘 기본이었다. 그런데도 연차가 주는 책임감으로 본인보다 빠르게 본인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는 후배 간호사들이 막막해하는 일들도 앞장서서 일러주시고, 대신해주시곤 했는데... 그때 그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눈물) 평간호사에 머문다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교대 근무는 피해보겠다고 승진해서 관리자급이 되었지만 그 자리의 무게를 이겨내느라 주중에는 거의 본인의 사생활, 가족들과의 개인적인 시간도 없이 병원에 올인하는 선생님들. 이 마저도 자녀를 양육하거나 집안일을 해주는 서포터, 적어도 돈을 주고 고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보니 내 커리어를 유지하겠다고 내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들이기도 하시더라.

출산, 육아로 넘어가는 과정을 굳이 거치지 않더라도 임상 간호사로 오래 일한다는 건, 현재 대한민국의 시스템 상에서는 내 건강과 수명을 깎아먹으면서 다른 것엔 신경을 끈 채로 오로지 일에만 매달려야 하는 일이었다. 뭔가 체계적으로 내가 무엇을 실제로 해보면서 배울 수 없는 학부시절 실습 시스템, 지금이야 처우가 좀 많이 나아졌지만 항상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만 했던, 잠은 당연히 포기하거니와 기본 8시간 근무 의외의 근무 시간 전후로 2시간씩, 4시간 초과 근무를 해도 수당하나 요청할 수 없던 신규시절. 신규시절이 지나고도 동시간에 쏟아지는 여러 일들 속에서 우선순위를 따져 하나씩 해보려고는 하지만 꽤 자주, 중환 2-3명을 끼어서 평균 12명의 환자들을 보다 보면 놓치는 일도, 빼먹게 되는 일도 너무 많아 감당하기 어려웠던... 신규시절에는 내가 미숙하니깐, 아직 일이 느리니깐 그런 거 지라며 내 탓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연차가 쌓이며 리더급으로 성장해 리더 업무를 하면서도 1분 1초 긴장을 놓을 수 없고 머릿속에는 '그다음엔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나에게 달라진 게 있다면 식사를 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일했거나 초과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 초과근무 수당 신청을 한다는 거였다. (물론 그 시간만큼은 다 채워서 쓰진 못했다.. 연차가 쌓인 그 시점에도. 그리고 연차가 쌓였다고 식사를 못하면서 초과근무를 하는 날이 결코 줄지는 않았다. ㅠ_ㅠ)

간호사로 일하면서 앞으로 치매가 오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알고 있는 것들의 특정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 일이 많아졌고 이유 없이 머리가 아파 진통제를 먹는 일도 잦았다. 제 때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하고 먹을 수 있을 때 몰아 먹고, 스트레스를 푼다고 매운 것을 먹다 보니 만성 위염은 어느새 한 몸이 되었다. 일반 내과 병동에서 있을 때는 근무시간 내내 화장실도 못 가면서 일한 와중에 환자의 소변 백을 비우다가 '졸졸졸' 소리가 자극이 되어 백을 중간에 잠그고 "죄송해요, 잠시만요. 그대로 두세요!"라고 보호자분께 외치고 직원 화장실로 뛰어갔던 일도 있었다. 아마 내 기억에 그 이후로 요로감염으로 몇 차례 항생제를 먹었었다. 안 그래도 근무를 하는 날이면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 오는데 교대 근무 패턴에 적응을 하지 못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출근한 날이면 잠깐 찾아오는 내 시간이나 황금 같은 쉬는 날에 하루종일 침대와 한 몸이다가 마는 날도 많았다. 쉬는 날이 많아 보이는 근무표지만 나이트 근무 후 쉬는 날을 제하면 한 달에 제대로 쉴 수 있는 나은 몇 개 되지도 않았지만 그마저 다른 일에 열정을 쏟기에는 내 체력이 너무도 부족했다.

그나마 신체적으로 조금은 편했던 정신과 안정병동에서의 근무도 만만치 않았다. 너무 타이트한 병원 인력 산정에 직원 안전의 위협을 느낄 때가 너무 많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했으며 특정 이벤트가 하루에도 두 세 차례 터지는 시즌이면 동일하게 밥도 못 먹고 제시간에 퇴근도 하지 못했다. 연애 시절 지금의 남편이 몇 번 나와의 약속으로 나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병원 1층 로비에서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1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준 것 같다. 어느 한 번은 오늘처럼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퇴근시간 보다 2시간 늦게 퇴근을 하면서 가기로 한 레스토랑은 가지도 못하고 문이 열려있는 곱창 집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그날의 스트레스를 털어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새 전해 듣기로 4차 병원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병상 수가 줄었기 때문에 이에 따른 간호 인력을 줄이라는 압박이 병원 내에서 있다고 한다. 특히 병동의 야간 근무자 수를 줄이라는 지시가 많았다던데 원래도 가장 인력이 적은, 그러면서 환자들이 쉽게 안 좋아지는 야간에 인력을 더 줄인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 되었는데도 화가 났다. 그러면서 일반 내과 병동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날이면 물 한잔 못 먹고 일하던 날들이 더 많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밤에 물 한 모금 못 먹고 일했다고 정시 퇴근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아침 9시경, 퇴근 시간은 이미 2시간이 지난 시점에 병원을 나서면서 몸이 썩는 느낌이 바로 이 거구 나란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리고 오늘, 내년도 보건 임용 수업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면서 내년도 간호대 정원을 1000명 증원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의대 증원에 묻혀서 유야무야 확정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듣는 소식이었던지라 나만 몰랐던 건가 싶어 주변에 이를 아는 사람이 있나 물어봤지만 거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의대 증원에 대해서는 의사 집단은 똘똘 뭉쳐 파업을 하고, 이로 인해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네 마네 이런 논란이 지속되는 반면 간호대 증원은 가타부타 반대한다는 입장 표명 없이 후루룩 결정이 되었다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항상 얘기하는 것이지만 임상 간호사들이 부족한 것은 간호대 증원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임상 간호사들이 계속 임상에서 일을 하고 싶은 뜻이 있는데도 실질적인 여러 가지 여건이나 상황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이에 대한 개선이 먼저라는 것을 왜 등한시할까. 간호대 정원을 늘리는 건 학령인구도 줄고 있는 시점에서 오히려 간호사 학력 하향 평준화만을 가져오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누구를 위한 일인 것인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차원에서도 앞날이 어둡기만 하다.

chat GPT가 만들어낸 지적이고 친절한 간호사 이미지 :)

나에게도 내가 하는 일로 하여금 타인에게 진정으로 쓰임 받고 싶고, 상대방이 아플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실제적인 도움이 되고 싶은 신념이 있었다. 그리고 임상간호사로 일하며 그 꿈을 이루는 나날들이 행복했었다. 그런데 그런 사명감이 있다 한들 내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고 직원과 환자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일하면서 종종 경험했다. 임상 간호사를 내 발로 그만둔 이 시점에, 대한민국의 임상 간호사의 현실이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마음 한 구석이 많이 아프고 속상하다. 숨 돌리며 차분하게 환자를 간호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임상 간호사들 얼굴에서 나오는 미소가 진정한 행복에서 짓게 되는 미소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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