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철학하기(십편)
* 생각 좀 하고 살자는 마음으로 쓰는 철학 매거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엔 어떤 의미들이 담겨 있을까요? 어떻게 살 것인지 묻는 것은 사소한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도 자아정체성 및 인생의 방향성과 관련되어 있죠. 세상에 태어나 철 들고 보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금할 수밖에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의문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여기엔 삶의 목표와 삶을 이루는 조건들, 욕망과 의지, 도덕과 가치, 정신적 안정과 물질적 풍요, 인간 관계 등 수많은 고려들이 포함되어 있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두고 잘 산다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고 물을 때 툭 튀어나올 수 있는 대답이 '잘' 입니다. 잘 산다는 것. 잘 살기 위해 인간은 세상에 적응하고, 세상을 자기에 맞게 변형시키기도 하죠. 또한 각자의 한계(타고난 성격이나 신체 조건, 가족이나 국가와 같은 주변 환경)를 극복하며 살아가려 노력하고 그에 따른 성공과 실패, 환희와 좌절을 경험합니다. 이런 결과들을 종합하여 '잘 산다'라 평가하는 것이죠. 그런데 '잘' 이라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상대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상대적 기준에 따라 평가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은 개인적 가치의 실현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어 떵떵거리는 것을 잘 산다 여기고, 어떤 사람은 잘 살기 위해 창작에의 고통을 즐기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정말 많은 것들을 이루어도 잘 살았다 생각지 않고, 어떤 사람은 특별히 이루는 것 없이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기도 하죠. 이렇게 사람들마 자신의 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그 목표를 이루는 정도도, 그에 대한 만족도 -삶에 대한 태도까지- 역시 다릅니다.
개인의 가치 실현과 공동체의 가치 준수
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줄여나갈까?
문제는 상대적 기준에 따른다면 '개인'이 우선시 된다는 점이겠죠. 따지고 보면, 인간은 생존의 문제 앞에서 도덕을 버리는 존재이기도 있습니다. 우선 내가 살고 보자는 생각, 그것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한다면, 그래서 더 잘 살았다고 느낀다면, 무엇이 문제 될까요?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도덕은 당위적 요청에 불과하단 사실을 절감할 때가 많죠. 누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자기부터 고려하고, 누구는 타인을 먼저 고려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것이 또한 인간 세상이니까요.
개인의 가치 실현과 공동체적 가치의 준수에는 이렇게 일정 부분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줄여나가야 할 필요가 생기죠. 몇몇 사람들이 도덕을 저버리고 산다 해서 너도 나도 그렇게 산다면 인간 사회가 동물의 세계와 다를 게 없으니까요. 잘 산다는 건 나와 타인, 그리고 공동체라는 범주까지 고려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매우 복잡한 셈법이 요구됩니다. 비록 모두를 만족시키긴 어렵고 절대적 기준을 세울 수 없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조건들은 있습니다.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조금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세상을 위하여
어느 정도의 먹고 살고, 어느 정도 안전하며, 어느 정도 어울릴 수 있고,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라야 '잘 산다는 것'에 대한 논의 역시 가능할 것입니다. 상식선 상에서 생각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으며, 동의할 수 있고 합의할 수 있는 '잘 사는 것'의 기준이 마련되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테죠. 이 기준을 마련하고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인간은 끊임없이 투쟁해 왔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 역시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잘 살기 위해 애쓰는 것과 '한 인간 집단'이 잘 사는 것은 다른 문제이고,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없는 것은 현실이고, 모든 사람이 잘 사는 것은 이상입니다.
하지만 '한 인간'이 '어떤 인간'이느냐에 따라 그들이 모여 이룬 '한 인간 집단' 역시 달라질 수 있는 일이죠.
생각을 생각하다 - 바스락 https://www.basolo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