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철학자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다. 내가 누구인지, 사는 게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죽어야 하는지,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정의란 무엇인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끝없이 질문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하는 것은 꽤 피곤한 일이나 그것을 감수하는 까닭은 더 나은 해답을 얻기 위해서이다.
어떤 철학자는 자신이 해답을 찾고자 하는 철학적 문제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나은 해답을 위해 평생을 바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철학자를 꿈꾸었던 적이 있다. 철학과에 입학한 난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삶이 어떤 의미인지 찾기 위해 훌륭한 철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왕 할 거, 제대로 해보자며 세계 최고의 철학자를 목표로 공부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학자가 아닌 글쓰는 사람으로서 철학을 대하고 있지만.
철학자들은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맞고, 과거에도 미래에도 맞는 해답을 찾는다. 나에게만 답이 된다면 그것을 진리라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소 불문하고 언제나 진리가 될 수 있는 사실을 '보편성'이라 부르는데,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 중 하나이다.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더욱 함축적이고 압축적인 개념으로 이어지고, 철학자들은 이를 위해 포괄적이고 심도 있게 사고한다.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보편적 생각을 위한 노력
가령,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한다면, 철학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정의(正義, justice)'에 대해 '정의(定義, definition)'하는 일이다. 그것도 논리적으로, 주장과 근거를 갖추어, 매우 타당하게 그 뜻을 밝힌다. 그런 후에, 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는지,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어떤 사람은 왜 정의를 실현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지, 마찬가지로 어떤 나라에서는 그렇고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지를 따져 보며 말이다.
이처럼 보통 사람보다 수십 배는 사고하고, 수십 번은 고민해 내린 결론, 그리고 결론을 내리더라도 이것이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태도, 여기에 타인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에 이르기까지, 철학자의 노고는 생각보다 크다. 이런데도 철학이 쉽다면 그것은 철학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러한 조건들을 다 충족시키다 보니 철학자들은 다른 별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쉬운 말들을 어렵게 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철학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일쑤고, 어떨 때는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철학하는 사람들은 재미있고 매력적이다(‘나’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서양에서는 동양에서보다 철학자들을 우대하고 그들이 가진 지식과 지적 행위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가치 있게 여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그것 역시 철학자들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생존의 문제와 의미의 문제
그리고 철학적 선택
인간의 삶엔 '생존'의 문제와 '의미'의 문제가 놓여 있는데, 철학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후자에 무게감을 둔다(물론 철학적으로 그렇단 의미이다. 철학자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그 무게감이 달라지기도 한다. 절대적으로 무엇이 더 소중하다고 말할 순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더 이상 철학이 내 삶에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철학자로서 평생을 살겠다는 나의 결단도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살다 보면 그 인생의 무게가 바뀌기도 한다. 그것이 삶의 아이러니다. 나를 찾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던 철학을 훌훌 털고 나올 줄이야. 물론 해답이 없으면 미련없이 그만두자는 결심을 했었지만 그런 예감과 실현은 너무나 큰 차이이다. 그런데 그것은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전주의 시작이었다. 학교에서의 철학을 그만두고 사회로 나온 나는 할 줄 아는 것(먹고 사는 기술)이 하나도 없는 사람에 불과했으니까.
인간은 여러 선택을 하고 그 선택마다 많은 의미를 따져 묻는다. 하지만 그 선택이 본인이 바라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의미를 따져 묻는 일이 무의미하기도 하다. 당장 내 앞에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도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각하기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좋든, 싫든 어느새 철학을 공부하는 일이 나의 습성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철학을 통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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