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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Feb 24. 2022

(갤러리 @t바솔) 이원경_설치미술

내가 만난 아티스트, 그 세 번째

 1

시원의 바다가 있다면, 그곳에 원시의 생명이 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겠지.
그것으로부터 하나의 전설이자 하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 사진으로 작품을 보았을 때(실제 보지 않았을 때)의 인상은 원시 생명이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것들이 허물거리며 원시의 바닷속을 유영하는 것 같았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그것들은 자신만의 뿌리를 갖고 있었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것들이 고구마 넝쿨처럼 사방으로 뻗은 뿌리들이 팔인양 다리인양 너울대는 모습은 공상 과학 소설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에서 발견한 새로움은, 이 수많은 작품들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꿈틀거릴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작가든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테지만 그것을 작품으로 풀어놓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론 그것은 의도치 않게 발견될 수도 있고 다양한 작품을 만들면서 얻어질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작품이 유명해지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야기가 생겨나기도 한다.


언뜻 보면 부피감을 갖고 있어 조각처럼 느껴지는 작품들은 설치미술로서, 특히 작품을 만드는 독특한 작업 방식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알루미늄 와이어를 이용하여 한땀, 한땀 뜨는 ‘뜨개질’ 방식으로, 미술계에서도 이는 매우 희귀하다. 알루미늄 와이어라는 매우 차갑고 단단한 물질로 ‘털’이라는 따뜻하고 부드러움을 표현했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하나의 사물이 가진 특성에 배치되는 특성을 얹어 서로 간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다.


작품 전시 사진: 이원경 작가 제공 (조명과 사진이 좋아 실제 작품을 대할 때와 다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진이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다.)


이렇게 작업 방식에서나 표현 방식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이것이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이고 예술가로서 해내고 싶은 목표이기도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회화가 주된 작업이었지만 설치미술을 하면서 마침내 ‘이원경 작가만의 작품’을 일구어낼 수 있었다. 회화나 드로잉도 좋지만 설치미술로 표현했을 때의 느낌이 훨씬 좋다. 성경에 등장하는 ‘요나 이야기’를 담은 ‘고래 시리즈’는 이러한 이원경 작가의 작품이 갖는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전시 리뷰) 분홍 고래_이원경_카라스갤러리


무엇보다 이원경 작가의 작품은 현대 사회의 특성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알루미늄 와이어란 소재로부터 생명력 넘치는 형태로 이어지는 작품의 모순되고 배치되는 특성은 ‘경계의 흐릿함’이라는 시대의 특성에 비유해 볼 수 있다. 경계가 흐릿해진다는 것은 한편으로 정체성의 약화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다양한 정체성이 가능하다는 확장된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수많은 ‘페르소나’로 뒤덮인 현대 사회를 떠올려보면 그렇다.


나아가 형상과 반형상이라는 조금 더 어려운 개념으로 '경계의 흐릿함'을 이해해 볼 있다. 작품은 조각처럼 그 형상을 가지지만 그 안은 텅 비어 있고 훤히 들여다 보인다. 안과 바깥의 경계가 있지만 그 경계는 불분명하기에 반형상이기도 하다. 21세기가 그렇다.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확장현실 등 이미 실재와 비실재를 가늠할 수 없는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원경 작가의 작품은 새로운 세기를 대표할 만한 빛깔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점과 상상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현실과의 연계 속에서 철학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 여기에 더해 작가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원경 작가의 작품은 높은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해석으로 작품을 바라본다면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작품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기에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들이 등장할 것을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이원경 작가의 작품이 더욱 돋보일 수 있는 이유이다.



 2

아래는 작가 노트의 일부이다.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와 이를 바라보는 나의 감상엔 차이가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사람이고 나는 그 이미지를 텍스트로 전환하여 다르게 표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깨닫지 못한 주제 의식을 발견하여 재해석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게 작품은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게 될 것이고 감상자는 작품을 더 풍요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 노트 - 하나

한 화면이나 한 주제의 작품에 여러 가지 특성이 공존하는 상황을 연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선재를 따뜻하고 부드러운 뜨개질 기법과 만나게 하거나 식물성의 소재를 동물이나 유기체의 이미지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이 다양성이 넘치는 세상에서 나와 타인이 서로 함께 살아가고 존중하며 공존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특성을 ‘좋다’, ‘싫다’라는 성급한 판단으로 두려워하거나 배제하는 것 대신 여러 가지 특성을 특성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서이다. 드로잉 Seed 시리즈와 설치작품<여러 개의 줄기를 지나 부유하고 부유하는...>은 작가의 이런 생각을 좀 더 세부적으로 담고 있다. 작가는 종의 다양성에서 이미 갖추고 있는 공존의 방식이 어떻게 사람에게도 이로운지 풀어서 이야기 한다.


작가 노트 - 두울

살아가면서 삶의 중요한 순간에 그것이 무엇이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성적인 판단을 우선시해야 하는 사안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문제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감성적 판단보다는 이성적 판단을 중요시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각자 자신의 문제에서 자기 자신이 솔직하게 따라야 하는 것은 자기 심장이 전해주는 신호, 그러니까 조금 더 감성적 요소에 대한 지지의 결과가 개인에게는 보다 지혜로운 선택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부터 이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리즈는 심장인 듯 뇌인 듯 약간은 모호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B·Heart’는 ‘뇌(brain)’와 심장(heart)’을 동시에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3

영상으로 감상하는 작품 세계


in아트(유튜브)


in아트(카카오티비)


후기
이 글을 쓰는 데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구나 함께 읽을 수 있는 글이 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작품에 대한 감상(주관적 이유)과 함께 작품이 지니는 가치(객관적 시각)를 함께 떠올라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길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몇 번의 전시회를 통해 이원경 작가님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셨고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어 작품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호의에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작업은 '현대의 빛깔을 모으다'라는 기획의 하나이다. 현재 100여 명의 현대 예술가들(현역 예술가들)에 대한 100여 편(물론 상징적인 숫자이지만)의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작업 중이다. '21세기의 모던함' 또는 '현대의 빛깔'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한 일이다. 알음알음 알게 된 작가분들을 만나면서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현재는 미술 쪽에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점차 분야를 넓혀갈 생각이다. 음악이든 무용이든 사진이든. 개인적 호기심으로 시작한 작업이다. 감상하고 공부하며 짬나는 대로 틈나는 대로 해나가는 중이다.


예술은 공감이다 - in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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