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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Oct 24. 2022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있지?

우주로 향하는 인간에게 보내는 쪽지


1977년에 떠난 보이저 1호와 2호가 태양계를 지나 외계로 날아가고 있다. 55개로 언어로 된 지구인의 인사말과 인간의 음악, 그리고 자연의 소리가 담겨 있는 디스크도 동승했다. 또한 지구와 인류에 관한 여러 정보들이 담겨 있는 사진 115장도 함께 실려 있다. 더불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류의 궁금증도 편승하여 끝없이 펼쳐진 암흑의 시공간 속으로 날아가고 있다.


‘여행자’라는 '보이저'의 뜻처럼 보이저 호는 긴긴 여행을 하는 중이다. 2025년 경이면 교신이 끊길 예정이라는데 그 안에 어디까지 날아갈지, 또 무엇을 발견할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외계인이 이를 발견하고 지구를 침공할 수 있다며 보이저 호 프로젝트에 반대한 학자들도 있었지만 희망찬 기대를 막을 수는 없었다.


탐구에 대한 열정과 탐험에 대한 의지와 호기심으로 가득찬 인류가 만들어온 문명의 결과이자 기적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우주 탐험과 같은 인류의 탐험 정신이 오늘의 인류를 만든 것은 틀림없다. 인류 문명은 탐험과 개척, 탐구와 개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이저 호의 여행에 우연한 발견이 더해진다면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를 안겨다 줄 수 있을지 모른다.


보이저 호의 여행과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


그런데 우주로 꼭 가야만 할까? 보이저 호의 여행이 인간이 해결해야 할 다른 숙제만큼 중차대한 일인지, 엄청난 개발비를 들일 만한 프로젝트인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돈으로 아프리카의 난민과 기아를 돕거나 현재의 기후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데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가고자 하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지만 얼마나 절실하고 필요한 일인지를 묻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이유로 미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의 우주 개발이 아닌 민간 차원에서의 우주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그 주역은 바로 엄청난 자금으로 온갖 모험을 즐기는 일론 머스크이다. 그는 스페이스-x 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우주 개발에 뛰어들었고 우주 왕복선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고 있다.테슬라 사를 설립하여 전기차를 만든 것 역시 추후 우주 개발용 차를 양산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 그에게 이와 같은 생각은 그저 비웃음에 그칠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그것이 멋진 생각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진정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시도인지, 인류의 진보에 도움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 인류를 위한 일인지, 몇몇 소수의 탐험에 대한 욕심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돈이 많은 이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그의 발언권이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무척 중요하다 여기는 일일지라도 한번쯤 그 의미의 중량을 매달아 볼 필요는 있다. 처음엔 가야 할 이유와 닿을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출발했으나 가다 보니 어느 순간 가야 할 이유가 희미해지고 그 목적지도 불투명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지 않는 것보다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만 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동기와 목적에 대해  지속적으로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확신에 가득 차 시작했고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할 수 없을 만큼 계획했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소나마 비틀어지고 비뚤어지기 마련이다. 잠깐이나마 멈춰 서서 그 길이 정말 가고 싶었던 길인지, 가야만 했던 길인지,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될 길인지 알 수 있기도 하니까. 이렇게 가끔 태클을 걸어주는 것도 철학의 역할이다.


확신에 찬 길이라도
가끔 어디로 가는지 돌아봐야


어쩌면 인류는 지금 너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과학적 성과와 문명의 진보가 있었으니 앞으로도 그래야 하고 그렇게 가야만 한다는 관념이 인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여태 달려왔던 진보의 속력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무리하게 가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반발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진보인지, 그저 욕심인지에 대해.


속력은 얼마나 빠르냐 하는 것이고, 속도는 속력에 방향성을 더한 개념이다. 속도에서는 '어느 정도의 빠르기'보다 '어디를 향해'라는 요소가 더욱 중요하다. 100광속의 속력으로 100년을 달려갔다, '그 반대 방향을 향해' 다시 100광속의 속력으로 100년을 달려오면 속도는 '0'이다. 물론 그 100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의도는 아니지만 그 방향성만 따진다면 '제자리걸음'에 불과하다.


살다 보면 가다 보니 이만큼 와 있고, 멈출 수 없어 계속 가는 경우가 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은, 아마도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속도가 아닐까.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나는 왜 걷고 있는가? 그리고 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와 같은 질문들이다. 이것이 바로 '반성'이라 부르는 생각하는 인간의 한 능력이다.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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