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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May 11. 2024

도덕경 20장 흐리멍덩하고 빈털터리인 나

혼란스러운 세태를 바라보며

원문은 생략했다. 한글로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괄호 안의 부연 설명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노자 도덕경 20장 번역 및 해설


본문


배움을 그치면 근심도 사라진다. ‘응’이라 대답하는 것과 ‘네’라고 대답라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고, ‘선(도덕 또는 기존 질서)’을 행하는 것과 ‘악(비도덕 또는 일탈)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다르겠는가. 뭇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는 없다(뭇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 나라고 무조건 외면할 수도 없지만). 변하는 세태를 그저 바라볼 뿐(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 이를 어찌할까. 그 끝이 보이질 않으니.


뭇사람들은 희생양을 바치듯(제사를 지내거나 잔치를 하듯) 봄날에 누대에 오르듯 희희낙락 들떠있는데, 나만 홀로 아무런 조짐 없이 담담한 것이 아직 웃지도 못하는 갓난아기와 같고, 돌아갈 곳 없어 서성이는 모습과 같다.


세상 사람들은 다들 영악해 보이는데(자기밥그릇 챙기고 사는데), 나만 홀로 완고하게 버티는 시골 아재 같구나. 세상 사람 모두 여유 있어 보이는데, 나 홀로 빈털터리 같다. 내 마음은 바보의 마음인가 흐리멍덩하기만 하다. 세상 사람 모두 총명한데 나 홀로 아리송하고, 세상 사람 모두 똑똑한데 나 홀로 맹맹하다. 바다처럼 잠잠하고 쉬지 않는 바람 같다.


나만 홀로 뭇사람들과 달라 보이니, 식모(食母,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사람)를 귀히 여길 뿐이다.



해설


하나의 가정을 해 보자. 세상 모두가 미쳐 있다면 나는 미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럼에도 제정신을 차리고 사는 게 좋을까. 북한과 같은 독제 체제에서 살아가는데, 나만 빼고 모두가 독재자를 찬양하는데(그것이 가짜라 해도), 나만 그리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현명한 행동일까. 참 딜레마이다. 노자는 현재 자신이 그런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지금 모두 정신이 나가 있다. 제사를 지내고(일종의 축제를 벌이는)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마냥 들떠 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적은 들떠 있을 때이다. 차분하지 않고 조금은 흥분된 상황. 이때에는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주의력이 약해지기 마련인데,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들떠 있을 때 위정자들은 이를 이용하여 국민을 조정하기 마련이다.  


지금 이 시국에 ‘응’이라 말하든 ‘예’라 말하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현실을 똑바로 보고자 하는 자신만 흐리멍덩한 것 같고, 완강히 고집만 부리는 사람 같아 보일 뿐이다. 뭇사람들은 잘못된 정치라도 좋다고 말하지만 노자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본다. 외로운 상황이다. 100명 중 99명이 그러고 있는데, 이 현실이 가짜라 부정할 수도 없고, 혼자 부정한들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다.


잘못된 가치관이 팽배한 곳에서는 선이나 악도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 부패가 만연한 곳에서는 부패하지 않은 사람이 문제이고 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생활도 그렇다. 많은 이들이 아마 ‘미친 척’ 아니면 ‘미쳐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불합리한 세상을 도저히 견딜 순 없을 테니까. 2장에서도 보았듯 사람들이 아름답다 여기는 것이 추할 수 있고, 사람들이 선하다 여기는 것이 악할 수도 있다.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로 부르던 한창 잘 나가던 시기에 로마인들은 흥청망청 취해 있었다. 술에 취하고 먹을 것에 취하고 번영에 취하고, 그런 자신들에 취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기분으로 살았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로마 시민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이를 더욱 부추겼다. 경기장을 세우고(이건 정말 인류의 건축사에서 대단한 일이었지만) 거기에서 연극을 하고 검투사들의 경기를 즐기며 환락에 빠져 있었다. 12장에서 보듯 사람들은 다들 온갖 자극에 중독돼 있었다.


그래서 노자는 식모(食母)를 귀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20세기에 많았던 식모는 남의 집에 고용되어 주로 집안일을 맡아 하는 여자를 가리킨다. 하지만 노자의 시대는 2500여년 전이고, 여기에서는 이 단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식모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사람’으로 보아도 무빙하다. 노자는 지도자란 식모가 되어야 한다고 에둘러 비판한다. 이는 3장에서도 본 것처럼 기본과 근본을 지키는 정치를 가리킨다.


대개 살림을 잘하는 이들은 돈을 흥청망청 쓰지 않고 절약하는 생활을 한다. 또한 맛이 있고 기름진 음식을 먹이기보다는 맛이 없고 담백하더라도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은 알뜰살뜰할 테고, 그 누구보다 집안 사람들을 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눈을 만족시키고 입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몸에 좋아 진정 건강해질 수 있는 방식이 가장 좋다.


노자가 3장에서 뼈와 배를 튼튼하게 하라고 말했는데, 이는 곧 한 국가와 사회에 가장 필요한 곳에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일 축제를 벌이려면 매일 축제를 벌일 만큼 기초가 단단해져야 한다. 기초가 단단하지 않다면 언젠간 무너지기 마련이다. 로마가 무너진 것은 지나친 확장과 방만한 통치에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무너진 것은 아니다. 균열은 서서히 진행되었고, 그걸 알았어도 로마인들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20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장이 자기고백적인 수필 느낌이 때문이다. 사회 정치 비평서처럼 조금은 딱딱한 어조를 띄고 있는 다른 장들과 대조적이다.  이는 <논어>나 <장자>에서 보는 대화체도 아니고 자기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낸 듯한 노자의 독백처럼 다가온다. 마치 고대인과 대화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인지 노자의 심정과 당시 현실이 더 생생하게 살아나고, 이 현실과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관련 도서(내 책)

2023 세종도서 선정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믹스커피)

살림지식총서591 <도가>(살림출판사)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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