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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May 12. 2024

도덕경 21장 공덕을 지닌 사람이 되어라

너도나도 공덕 인간

원문은 생략했다. 한글로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괄호 안의 부연 설명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노자 도덕경 21장 번역 및 해설


본문


공덕(孔德, 큰덕)은 오직 도에 따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도라는 것은 그저 황홀(인간의 인식으로 파악할 수 없는)할 뿐이다.


황홀한 가운데 어떤 꼴이 있고, 황홀한 가운데 어떤 사물이 있으며, 그윽하고 아득한 가운데 정수(존재의 본질)가 있으니, 그 정수가 깊고 참될 때 그 안에 믿음(신묘)이 있다.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이 사라진 적이 없으니(세상이 있고부터 존재해 왔으니) 이것으로서 만물의 시원을 가늠할 수 있다. 내가 만물의 시원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해설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 사시는 분은 주목! 여기 공덕이 등장한다. 참 신기하다. 도덕경에 등장하는 공덕이 한국 지명에 있다니(하지만 실제 노자는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인기가 있었던 고전이다). 마포구청의 설명으로는 이렇다.


공덕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높은 고원의 평평한 곳을 뜻하는 우리 말의 '더기' 또는 '덕', 언덕을 일컫는 '큰 더기'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설과 옛 지명인 공덕리(孔德里)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합쳐보면 큰 언덕을 도덕경에 등장하는 ‘공덕’으로 지칭했을 가능성이 높다. 옛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냥 큰 언덕이라거 말하기보다는 문자 하나 쓰는 게 더 힙한 일이었을지 테니. 다시 말해, 덕이 있는 언덕, 덕이 있는 마을.


공덕(孔德)이란 큰 덕을 뜻한다. 큰 덕은 당연히 도에 따라 얻어지는 것이다. 큰 덕을 지닌 이들은 사심이 없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며 그에 따른 보상을 바라거나 그 결과물에 대해 본인이 했다 떠벌리지 않는다. 황홀하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큰 덕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장자에는 ‘우물 안 개구리’ 우화가 등장한다(그렇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우화가 맞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우물 밖 강에 대해, 그보다 더 큰 바다에 대해 이야기한들 개구리가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물이라 해도 자기 기준을 벗어나는 걸 떠올리긴 어렵다. 그러하니 큰 덕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큰 덕의 가치를 알 리 없다.


노자는 그 황홀한 것 안에는 어떤 사물의 이미지가 있고, 어떤 사물의 형체가 있다고 말한다. 큰 덕은 가늠할 수 없다 하더라도 사물이 가진 본질(핵심)을 지녔다. 공덕은 도에 따라 살다보면 주어지는 인간의 특성이다. 1장에서 보앗듯 인간의 인식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거대 우주일지라도 도에 따르면 그 시원을 알 수 있다고 보았다.


노자는 큰 덕을 지니면 만물의 시원을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다 말한다. 믿을 수 없을지 모르나 사실이다. 큰 덕에는 정수가 있고 신묘함이 있다. 이는 정신적으로 고양된 상태를 표현하는 옛말이다. 지금은 점을 보는 무당을 일러 신기가 있다 표현하는데, 신기란 현대어로 말하자면 하늘과 소통하는 사람이자, 세상의 이치를 직관적으로 깨닫는 천재에 해당한다.


천재가 아니어도 신기가 없다 하더라도 어떤 한 사람이 큰 덕을 지니면 자연스레 정신적 힘이 생긴다. 세상을 아울러 보고 깊게 보는 힘, 이를 일러 ‘통찰’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그 큰 덕은 어떻게 생길까. 노자의 답은 도에 따르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도에 따르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물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하고 그것을 즐긴 사람을 의미한다.


오늘날로 따지면? 덕후 오브 덕후 오브 덕후. 곧 독후들의 덕후 정도? 예로부터 어떤 하나에 특출한 사람을 일러 ‘도가 텄다’고 말해왔다. 도는 여러 의미를 가지는데, 이처럼 장인과 같이 어떤 정점에 이른 것을 가리킬 때도 사용한다. 도의 길을 걷는 사람, 곧 도인. 노자식으로 표현하면 덕후는 덕질 도인이다.


그 중에서도 사람을 구제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이들을 가리켜 공덕이 있다 말하능 것이다. 만일 덕후가 자신의 덕질로 세상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이끌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기친다면 그는 곧 공덕을 지닌 인물이다. 사람사는 이치 정도는 알고 기본적인 도덕은 지킬 줄 알며 교양도 있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면 공덕 근처에는 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 찾기도 어려우니까.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그에게 공덕은 곧 탁월함(virtue, 덕)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성품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닦고 닦아야 한다고 보았다. 일종의 수행이자 연습. 아리스테텔레스는 또한 올바른 훈련은 강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즐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덕후들은 즐거움을 찾다 그 분야의 도인이 된 사람들이다.


공덕역 근처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이 공덕 인간이 되길 바라며. 그에 따라 부와 풍요도 자연스레 늘어날 테니.


*관련 도서(내 책)

2023 세종도서 선정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믹스커피)

살림지식총서591 <도가>(살림출판사)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richness-taote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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