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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Jul 06. 2024

도덕경 36장 희미한 밝음, 흐릿한 경계

바다와 같은 사람을 기다리며

원문은 생략했다. 한글로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괄호 안의 부연 설명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노자 도덕경 36장 번역 및 해설


본문


오므리게 하려면 반드시 펴줘야 하고,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강하게 해야 하며, 없애고자 하려면 반드시 일으켜야 하고, 빼앗으려 하면 반드시 주어야 한다. 이를 미명(微明, 희미한 밝음)이라 부른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딱딱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가 연못을 벗어날 수 없듯, 나라의 이기(통치 수단)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해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 이 말의 어원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므리든 약하든 없애든 빼앗든, 무엇을 하고자 하려면 그 반대의 것을 고려하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어떤 목적에 이르는 최선이라 생각한 방식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느 하나만 고집하다 오히려 잃을 수 있다.


통치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가두려 하면 저항하거나 도망가기 마련이다. 연물 안 고기가 씨가 마르지 않게 하려면 적당히 자유를 주어야 한다. 너무 통제하려고 하면 백성들이 저항하고 반항한다. 채찍뿐 아니라 당근이 필요하다. 통치자가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면 반발에 마주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처럼 자유가 확장된 곳에서도 다르지 않다.


장대높이뛰기를 보면 그렇다. 더 높이 날기 위해 창은 90도 정도 구부러져야 한다. 하지만 부러져서는 안 된다. 그만한 탄력을 가져야 상대적인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칼도 다르지 않다. 칼과 칼이 부딪히면 부러지거나 부서질 수 있다. 그래서 칼은 강도를 가진 만큼 부드러움도 지녀야 한다. 그것이 연마의 기술, 장인의 능력이다.


그리하여 미명, 희미한 밝음이다. 흰색도 있고 검은색도 있고 둘의 경계인 회색도 있다. 여기에도 한 발, 저기에도 한 발 들여놓는 회색분자가 아니라, 회색 그 자체를 가리킨다.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장에서도 보았듯 그것은 애매모호함이자 애매모호함에 대한 태도를 가리킨다. 달리 표현하면, 흐릿한 경계에 서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삶엔 선도 악도 있다. 선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악을 품을 수 없으면 악은 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악 역시 다르지 않다. 끝없이 악을 향해 달려간다면 선도 악을 알아차리고 그에 대해 저항할 것이다. 물론 악은 언젠간 사라져야 할 무엇인지 모르나 어느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아주 천천히 서서히 나아가고 달라진다.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혐오도 그렇다. 혐오는 경계가 너무나 분명한 사회에 나타난다. 너와 나의 구분이 너무나 확실하여 너가 내가 될 수도 너의 자리에 내가 다가갈 수도 없는 그런 곳, 용서도 타협도 배려도 이해도 없는 곳, 그런 것보단 무시, 조롱, 소송, 돈 같은 것들이 우선인 곳이어서 혐오가 통하고 혐오가 만연할 수 있다.


너와 내가 속한 집단의 경계가 흐릿하다면, 그래서 너와 내가 서로 섞이고 섞여서 살아갈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면 혐오가 살아남기 어렵다. 어느 한쪽 아니면 다른 한쪽이 되어버린 세상이기에 혐오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은연중에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가졌을 수 있다. 난 그곳이 아닌 이곳에 속하고 싶다고.


32장에 나오는 것처럼 바다는 모든 물이 흘러드는 곳이다. 그곳에 깨끗한 물만 흘러들어갈 리 없다. 바다와 같이 큰 사람은 선인도 악인도 똑똑한 이도 모자란 이도 다 포용하고 그들과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포용할 줄 아는 이가 많아야 사회가 조화로워지고 균형이 잡힐 수 있다. 그것이 곧 부와 풍요의 기초이다.


그런데, 35장에 언급한 맹자의 이야기처럼 그런 큰 사람이 되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모욕과 굴욕을 감당했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얼마나 오래 고민했을까. 이 맛, 저 맛 보면서도 올바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그곳으로 향하는 집념을 가진 사람이어야 가능한 길이다. 그래서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대기만성.


그런 사람들의 무궁한 탄생을 바라며.


* 노자 도덕경 1-30장은 아래에서

https://brunch.co.kr/brunchbook/taoteching


*관련 도서(내 책)

2023 세종도서 선정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믹스커피)​

살림지식총서591 <도가>(살림출판사)​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ohmykorea-desiresubj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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