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뽀시락 Jun 30. 2024

도덕경 35장 커다란 형상을 부여잡고

도의 담박함을 맛보다

원문은 생략했다. 한글로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괄호 안의 부연 설명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노자 도덕경 35장 번역 및 해설


본문


커다란 형상을 붙잡는다면 천하가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아가더라도 해를 끼지지 않으니 평안하고 평탄하며 태평하다.


음악과 음식은 지나가는 손님의 발길을 붙들지만, 도가 나오는 출구는 담박하여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쓰려 해도 고갈되지 않는다.



해설


먹빵을 떠올리게 만드는 35장이다. 음악과 음식이 지나가는 손님들의 발을 붙잡는다는 말이 참 재미있다. 도는 담박하다. 맛이 없다. 다시 말해, 자극적이지 않다. 온갖 자극으로 가득찬 현대 사회에 노자의 이런 말은 ‘디톡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게 사회와 마음에 독을 제거하여 균형을 찾아, 결국 자신의 삶을 사는 일, 그것이 노자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노자는 미니멀리즘의 원조이다. 욕망을 버리고 자극을 멀리하고, 이를 통해 삶의 본질을 깨닫고 자신의 내면에 귀기울이고 그에 몰입하는 삶의 방식이다. 이를 통해 사람은 안정을 찾고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더 이상 다른 사소하고 불필요한 일들을 내버려두거나 정리하며, 차분하게, 그렇지만 알차게 살아갈 수 있다.


예술적으로 보자면, 미니멀리즘의 탄생은 2차 세계대전 후인 1960-1970년대에 일어났는데,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적 움직임을 가리킨다. 기교를 최소화하고 사물이 가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화려한 색채나 추상적 형태를 멀리한다. 미니멀리즘은 이후 건축, 음악, 패션, 철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된다.


한편, 25장과 34장에 이어 다시 ‘큼(大)’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큰 공이 작은 공보다 크고 작은 공이 큰 공보다 크지만 그것이 ‘크다’라는 관념은 한결같다. “평면 위에서 한 점으로부터의 거리가 같은 모든 점의 집합이다.”라는 원의 정의에 따르면 모든 원은 그 크기와 관계없이 같은 값을 가진다. 따라서 그 ‘큼’은 절대적인 큼이다.


 35장을 14장에 비추어 이해해 보자면, 우주의 시작도 끝도 볼 수 없는 것처럼 큰 형상은 그 앞도 그 뒤도 볼 수 없다. 더욱이 구체적인 형상을 갖추지 않아 인간의 인식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운을 점치기 위해 점을 보고 사주를 보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운명은(운명이 있다면) 그 운명을 지닌 이가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운명은 가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14장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 구절인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쓰려 해도 고갈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는 이런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보려 하면 볼 수 없고, 들으려 하면 들을 수 없으며, 쓰려 해도 다 쓸 수 없다. 삶에 답이 없을 땐, 때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순히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 어떤 사명도 감당하다 = 큼大


세상에서 가장 큰 형상을 부여잡은 사람은 ‘큼’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그 ‘큼’을 가진 사람은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그 권한이 주어진 것처럼, 자격이 주어진 것처럼 천하가 움직인다. 하지만 나아가더라도 해를 끼지지 않으니 평안하고 평탄하며 태평하다. 공명정대함을 가진 이가 세상을 다스리듯 세상이 평안하고 평탄하며 태평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기회를 잡은 모든 이도 그렇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해 그는 오랜 시간을 준비한다. 절차탁마. 갈고 닦으며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세상은 은연중에 그에게 기회를 준다. 아주 작게 소리칠 테지. 지금이야!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은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느니라. 그 이유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그 어떤 사명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 -<맹자>

*관련 도서(내 책)

2023 세종도서 선정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믹스커피)​

살림지식총서591 <도가>(살림출판사)​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drawing-jungwoosung/


이전 04화 도덕경 34장 차고 넘치는 부와 풍요, 대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