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베옷 속에 옥을 품고 있는 사람
원문은 생략했다. 한글로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괄호 안의 부연 설명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나의 말은 알기에도 쉽고 행하기에도 싶지만, 세상에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다. 말에는 근본이 있고, 일에는 중심이 있으나, 이를 알지 못하니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를 알아보는 이가 적을수록 내가 귀할 수 있다. 그리하여 성인은 거친 베옷 속에 옥을 품고 있는 사람과 같다.
나의 말은 알기에도 쉽고 행하기에도 싶지만, 세상에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다. 희망적인 말이면서도 절망적인 느낌이기도 하다. 이것이 진리라 해도 마음 속에 의심이 있으면 그것을 따를 수 없고, 진리라 믿는다 해도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다 헛일이다. 이래저래 어렵고, 반대로 지켜보는 사람은 그저 갑갑할 뿐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그렇게 말했던 예수의 말을 따르는 자가 대체 몇 명인가. 자비를 베풀고, 욕망을 멀리하고, 자아에서 벗어나면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라 말한 부처를 따르는 자가 대체 얼마나 되는가.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 했지만, 공자의 말을 따르는 이는 또 얼나나 궈는가. 여전히 곳곳에서 전쟁이 터지고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다.
거친 베옷 솟에 옥을 품고 있는 사람. 비유가 참 적절하다. 겉으로 보면 허름하지만 속은 보석과 같은 사람이란 의미.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노자는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적을수록 내가 귀하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옥이라면 옥이다. 살다 보면 자신을 증명해야 할 때가 있다. 자신을 증명하기보다 더 좋은 방법은 자기 모습대로 살아가는 일이다. 자기 모습대로 사는데, 그 누구에게 증명을 하고, 왜 증명을 해야 하는가. 증명을 하고 싶다면 본인에게 해야 한다.
다들 먹고 살다 보니 자기 모습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무엇이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인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그럴 수 있다. 삶에 쫓겨 살아가기 바쁘다. 그럴 때엔 차라리 전생에 죄가 있던지 업장소멸의 시간이라 여기고 마음이라도 편히 가지는 것이 낫다.
누구나 한번쯤 빛나고 싶다. 그렇지 않더라도 내 삶이 망한 것은 아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고, 그래도 잘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조금은 나아질 거란 믿음을 가져보아야 한다. 어쩌면 그런 점에서 자기 결대로 살아가는 게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베옷을 입더라도 내면은 충만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자신에 대한 노자의 평가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세상 사람 모두 여유 있어 보이는데, 나 홀로 빈털터리 같다. 내 마음은 바보의 마음인가 흐리멍덩하기만 하다. 세상 사람 모두 총명한데 나 홀로 아리송하고, 세상 사람 모두 똑똑한데 나 홀로 맹맹하다.
-<도덕경> 20장
*노자 도덕경 1-30장은 아래에서
https://brunch.co.kr/brunchbook/taoteching
노자 도덕경 31-60장은 아래에서
https://brunch.co.kr/brunchbook/taoteching0
*관련 도서(내 책)
2023 세종도서 선정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믹스커피)
살림지식총서591 <도가>(살림출판사)
*노자 도덕경, 왜 부와 풍요의 철학인가?
https://www.basolock.com/richness-taotec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