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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Apr 12. 2016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탄생의 역사적 배경

징검다리 역사<4>

* 세상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역사매거진: 역사가 인류 스스로 간직한 자신에 대한 공유된 기억의 직접이라면 문명은 인간이 그 역사를 실현해 온 방식의 총체이다.


고대 그리스의 대서사이인 [일리아스]의 탄생 배경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원전 2000년 경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해군과 무역을 바탕으로 번성했던 미노아와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200년 경이 되면서 갑작스레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인구 과잉, 심각한 식량 부족, 끊임없는 전쟁, 그리고 북방에서 내려온 도리아인의 침입이 그 원인으로 꼽히는데요, 이 시기부터 [일리아스]가 등장하는 기원전 800년 경까지의 기간을 '암흑시대'라 부릅니다.

미노아와 미케네 문명 몰락 이후
암흑시대 = 기원 전 1200년~기원 전 800년

이 암흑시대가 끝나는 지점이 바로 호메로스의 서사시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입니다. 이 두 작품은 암흑시대 말기에 이르는 그리스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 이 시기를 '호메로스 시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일리아스]와 [오데세이아]가 기록된 것은 기원 전 800년 경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이 전승되어 온 시기는 훨씬 이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메로스'가 정말 이 두 작품을 저술했는지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도 논란은 있습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등장하는 영웅들은 엘리트 집단으로 귀족 출신들이 주를 이룹니다. 평민들이 등장하거나 그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드러나지 않는 점에서 당시 그리스가 귀족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에서 보듯 귀족 가문의 대립이 전쟁으로 치닫기도 하고 그들 사이의 유대 관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영웅 숭배 역시 유력 가문의 정통성을 알리고 그 가문이 지배하는 지역의 지방적 특색과 결함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봅니다.


그런데 기원전 800년을 전후하여 그리스에 많은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우선 페니키아 알파벳을 도입하여 그리스 알파벳으로 개량했다는 점, 에게 해 전역에서 상선의 활동이 증가하고 무역이 활발히 증대했다는 점, 부의 증가와 맞물려 그리스 인구 또한 증가했다는 점, 그리고 그리스의 정치 공동체이자 생활 공동체인 폴리스가 흥기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의 귀족 중심의 그리스가 평민 중심의 그리스로 서서히 재편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문학적 변신은
당시 그리스의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낭송으로 구전되어 오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문자로 기록되었던 데에는 이러한 그리스 사회의 변화가 큰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상업의 발달로 평민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의 정치적 지위가 상승했습니다. 게다가 배우기 쉬운 문자가 등장하면서 평민들을 중심으로 교육이 가능하게 되었죠. 이렇게 평민들이 그리스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귀족과 다른 그들만의 차별화(정체성)를 꾀하기 위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문학 작품으로 재탄생될 수 있었습니다.


유적이 발굴되기 전까지 트로이는 단지 신화 속 얘기로만 전해지고 있다가 1870년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박사의 끈질긴 탐사에 이은 발굴로 트로이전쟁이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죠. 그리고 몇 년 뒤엔 미케네 고분을 발굴하기도 했습니다. 이 발굴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고대문명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슐리만 박사의 노력이 없었다면 트로이는 아직도 지하에 묻혀 발굴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 [세계사 왜?] 중에서


*짧게 보는 <일리아스>

https://www.youtube.com/watch?v=PIjlHjs9Zzk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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