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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 내 삶을 브랜딩하다

호명사회에서 내 이름으로 살아남기

1990년대 말, 첫 직장의 문을 두드릴 때 IMF 외환위기를 온몸으로 맞았습니다. 직장인으로서 첫출발에 제동이 걸린 채 사람도 물건처럼 정리될 수 있음을 알았죠.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 4050 세대는 매일매일 세상의 크고 작은 변화의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습니다. AI가 촉발한 기술 혁명, 원하든 원치 않든 100세 시대를 향해 점점 길어지는 노후, 끊임없이 변화하는 직업 세계. 이런 변화 속에서 4050 세대는 어떻게 삶을 설계해야 할까요?

한국의 4050 세대는 삐삐에서 AI, 자율주행 전기차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디지털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부모 세대처럼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일하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부터, 유튜버와 크리에이터, 디지털노마드가 새로운 직업으로 부상한 시대까지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대학 진학, 취업, 결혼으로 이어지는 표준화된 인생 경로를 가능한 따르려 노력했는데, 이제는 또 새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라고 합니다. 이질적인 세대 문화 사이에서 낀 세대가 되어 이쪽 저쪽 모두의 눈치를 보고 있기도 하죠.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오랫동안 프리랜서 번역 업무를 했습니다. 같은 일을 긴 세월 동안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가던 중 40대 중반,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타트업에서 일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늦은 나이(?)에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으며 일하다 결국 지난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나오게 되었지요. 인생의 쓴맛을 함축적으로 맛보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앞으로 진정 필요한 것은 조직의 울타리가 아닌, 스스로를 존엄하게 지켜낼 수 있는 독보적인 고유 역량이라는 것을.

퇴사 후 절박한 심정으로 읽은 책, 호명사회에서 송길영 작가는 새로운 시대를 이렇게 예견합니다.

“홀로 선 핵개인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사회, 호명사회가 다가옵니다.호명사회는 조직의 이름 뒤에 숨을 수도, 숨을 필요도 없는사회입니다. 자신이 한 일을 책임지고 온전히 자신이 한 일에 보상을 받는 새로운 공정한 시대가 옵니다.”

공정이라는 화두는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내 이름 석 자로 과연 호명될 수 있을까?’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 제겐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통달하여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떤 상품도 없기 때문이죠.

전 예상보다 빨리 호명사회에 내던져졌습니다. 언제까지 침울하게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더냐?" 역시질문은 뿌옇던 제 시야를 선명하게 만들어줬습니다. 깊은 고민 끝에 저는 '공부'와 '나눔'에서 기쁨을 찾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이를 재구성하여 다른 이들과 글과 말로 나누는 과정에서 특별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자칭 ‘해방공부클럽’이라는 함께 읽고 쓰는 다정한 공부 커뮤니티를 만들었습니다. 요즘 핫하다는 스레드에 ‘스하리완(팔로우+하트+리포스트 완료)’을 외치며 매일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지난주엔 영상 하나를 유튜브에 겨우 올리고 유명 유튜버 마냥 구독, 좋아요! 를 외치고 다닙니다. 뉴스레터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 시작할까? 해외 유튜버들은 무슨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이런저런 레퍼런스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창조성과는 거리가 멀고도 먼 내가 과연 지식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의심이 매 순간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그런 부정적 감정 따위에 굴복하기엔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겪으며 살아온 마음 내공이 단단한 편입니다.


고군분투하는 제게 의외의 최대 지원군이 있으니 바로 챗 지피티(Chat GPT). 무슨 이야기를 건네도 찰떡 같이 이해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던져줍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젠 말 안 해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AI 덕분에 콘텐츠 제작의 진입장벽이 조금씩 낮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전문 작가나 PD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을 이제는 평범한 저도 도전해 볼 수 있으니까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체계화하고, 이를 콘텐츠로 만들어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스토리만 있으면 됩니다. 진정한 변화는 나만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제는 직장이나 직업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를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쌓아온 시간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이를 일관되게 전달할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이것이 바로 “라이프 브랜딩”입니다.


4050 세대는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라이프 브랜딩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패와 성공을 모두 경험했고, 사회의 급격한 변화도 몸소 겪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잠재적 가능성으로 우리 안에 늘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인지하고 시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안정된 직장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는 것은 슬프지만 인정해야 할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좌절모드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지요. 내 삶에서 작은 콘텐츠 소재를 발굴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다면, 막막한 미래에도 내가 살아갈 이유는 분명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에 대한 믿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 보는 용기입니다. 더 나아가 그 여정을 함께 할 따뜻한 연대 속에서 함께 공부하며 자립을돕는다면 우린 당당하게 서로를 호명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라이프브랜딩#호명사회#4050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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