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인프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최근 반려동물을 키우는 반려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는 단연코 '그레인프리'가 아닐까 합니다. 요새는 무언가를 더욱 많이 집어 넣는 것 보다는 불필요한 것을 빼는 것이 더 건강해 보이는 느낌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레인프리 제품에 사용되는 육류나 다른 원료들은 양질의 원료들을 넣어 그 값이 높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우리는 우리의 반려견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우리 곁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그레인프리 사료를 위해 선뜻 지갑을 엽니다.
grain, 즉 곡물류가 들어가지 않은 사료를 의미합니다. 곡물류에는 쌀, 밀, 옥수수 등이 포함됩니다. 야생에서 뛰놀던(?) 개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가축의 개념이 되고 더 나아가 반려의 개념으로 우리와 함께 산지 벌써 100년이 넘어가는 오늘날, 사실상 개들은 인간이 먹는 것들을 함께 먹으며(더 정확하게는 남기는 것들을 먹어왔지요) 조금 더 잡식성의 소화 기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개가 절대적으로 육식만을 100% 먹는 것보다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과 비타민, 미네랄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을 오늘날 수의사들은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레인프리 제품을 먹어야 하는 친구들이 분명 있습니다. 특정 곡물류에 알러지가 있는 친구들인데, 이 경우는 유전적이거나 환경적인 요인으로 발생하기도 하고 소화기관이 선천적으로 약한 초소형견 친구들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런 친구들은 곡물 대신 탄수화물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원료가 들어간 그레인프리 사료를 섭취하는 것이 맞습니다. 곡물을 대체할 수 있는 탄수화물에는 콩, 감자, 고구마 등이 있고 때문에 그레인프리 제품의 탄수화물 원료들을 보시면 렌틸콩, 감자, 고구마 등이 곡물류를 대체하여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 단지 소화력이 떨어지거나 왠지 곡물은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아 등의 이유라면 그레인프리 사료 섭취보다는 오히려 '양질의' 곡물과 육류/생선류, 채소 등이 골고루 들어간 사료를 선택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소화력이 떨어지는 친구들은 어쩌면 곡물 알러지가 아닌 글루텐프리 제품을 먹이시는 것이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밀의 경우 밀가루에 물을 가하여 반죽 하면 물리적인 운동에 의해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 서로 결합하면서 탄력성 있는 얇은 피막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을 글루텐이라 부릅니다. 글루텐의 피막은 이스트나 베이킹파우더에 의해 생성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빵이나 케이크 등을 부풀게 하고, 쫄깃한 면과 빵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데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글루텐 프리 빵을 먹거나 아예 빵이나 밀가루 음식을 먹지 않지요. 하지만, 일반적인 건강한 소화기관을 가진 사람들은 (너무 당연하게도) 글루텐프리 제품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몸에 나쁜 것도 아니고 충분히 소화할 수 있으니까요. 우린 이미 모두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지나치게 먹는 것과, 한 가지 음식만에 편중되어 식생활을 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요.
반려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내 친구가, 그것도 현미나 쌀을 너무나 맛있게 먹을 줄 아는 내 친구가 굳이 곡류를 제외한 그레인프리 사료를 먹을 이유는 없습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반려동물의 사료가 지금처럼 좋은 질의 제품들이 부족했을 때, 사료 업체들이 사료 제조시 필수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기준치를 채우기 위해 질보단 양을 고려하여 만들어낸 사료들이 있었습니다. 그럴 경우 지나친 탄수화물의 양에 육식을 위주로 생활해야 하는 친구들에겐 소화에 부담이 될 수도 있었죠. 또 다른 경우는, 정말로 곡물 알러지가 있는 친구들이 사료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작았던 경우입니다. 이런 이유로 탄생한 그레인프리는 프리미엄 사료, 양질의 사료의 대명사로 급부상해 최근 트렌드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반려견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고, 그레인프리 사료 라인은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가지다 보니 곡물 이외의 원료들 또한 양질의 원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실제로도 좋은 사료이기도 합니다.
2018년 FDA(미국 식약청)에서는 그레인프리 사료와 반려동물(강아지, 고양이 모두 포함)의 심장 질환(DCM:Canine dilated cardiomyopathy)의 상관성에 대한 간략한 조사 발표를 했습니다. 절대적 데이터수치와 더욱 정확한 근거에 대해서는 정밀 연구가 필요하다고는 했지만, 그 핵심은 이렇습니다. 그레인프리 사료는 곡물을 넣지 않는 대신 콩, 감자류를 탄수화물의 대체제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 원료들이 타우린 결핍을 초래하여 심장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해당 발표 이후 2018년 12월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수의과대학 연구진은 그레인 프리 사료와 심장질환의 관련성은 역시 타우린으로 인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FDA 조사 발표 link:
FDA에서는 추가적으로 닭을 주 원료로 한 사료를 주식으로 오랫동안 급여해 온 반려동물에게서 특히나 심장 질환이 높게 발생한다는 데이터도 내놓았는데, 이는 닭고기의 타우린 함량이 다른 원료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곡물 알러지가 없다면 질 좋은 사료를 급여해 주세요. 그레인프리일 필요가 없습니다. 소화력이 떨어진다면 글루텐프리 사료를 먹여주셔도 좋습니다. 특정 원료에 대한 알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래도 위장이 민감한 것 같다면, 정말 필요한 원료들만 넣어 만든 LID(Limited Ingredients Diet)나 센서티브(민감성) 라인의 사료를 급여해 주세요. 알러지를 확인하실 때는 특정 사료 브랜드로 확인하지 말고 생 원료 그대로만 먹여서 알러지를 검사해 주세요. 닭 알러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닭을 주원료로 한 사료가 아닌, 생닭과 삶은 닭을 통해 알러지를 확인해 주세요. 사료 안에는 주 원료 이외에도 수많은 부수적 원료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확한 알러지 판단이 어렵습니다.
곡물 알러지가 있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시중에 나온 타우린 영양제를 별도로 급여해 주시거나, 혹은 타우린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어패류나 생선을 간식으로 급여하여 이를 보충해 주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권장사항일 뿐 모든 반려동물은 각자의 유전적 요소와 생활 습관 및 환경에 따른 컨디션이 다르기 때문에 동물병원을 방문하여 수의사와 상담하여 진행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